[데스크칼럼] 참을 수 없는 개혁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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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2023년 1월 3일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개혁은 언제나 이권 카르텔의 저항에 직면하지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2023년 5월 16일 윤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우리 경제의 성장 발목을 잡고 있는 이권 카르텔, 부당한 지대추구의 폐습을 단호하게 없애는 것이 바로 규제혁신이고, 우리 경제를 키우는 것이다." (2023년 6월 21일 윤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우리 정부는 반(反) 카르텔 정부다.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 민주사회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은 부패한 카르텔이다." (2023년 7월 3일 윤 대통령 신임 장차관급 14명 임명장 수여식 중 발언)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규제, 즉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 (2023년 7월 4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보고 중 윤 대통령 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경제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키워드는 '이권 카르텔', '개혁', '규제 혁신'으로 압축된다. 키워드를 결합해 보면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고,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 킬러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 경제를 키우겠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이권 카르텔은 곧 기득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기득권, 이권 카르텔을 해체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고, 기득권이 가로막고 서있는 규제를 개혁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니 삼척동자도 무릎을 ‘탁’ 칠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말은 지당하나,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영 딴판이다. 정부는 우리 사회의 정말 강력하고 거대한 기득권, 이권 카르텔이라 할 수 있는 의료계, 법조계 등은 건드리지 않고,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사교육 학원 등을 뿌리 뽑아야 할 카르텔로 규정해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일부 귀족노조의 파렴치한 작태, 일부 시민단체들의 정부 보조금 유용, 일부 학원들의 불법적 비정상 영업행위는 마땅히 없어져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이 윤석열 ‘반 카르텔’ 정부가 말하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의 최우선 개혁 대상인가.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개혁 우선순위에 올려야 할 곳은 이들보다 더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의료계나 법조계 등 기득권 세력이 돼야 한다. 

지난 6월부터 비대면 원격진료 서비스가 본격 시작됐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한지 한 달 여가 지나자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국내 30여 원격진료 서비스 플랫폼 업체 가운데 썰즈, 파닥, 바로필, 체킷이 폐업했고, 엠오와 최강닥터 등도 조만간 서비스를 종료키로 했다.

무엇 때문일까. 기존 의료계 반발로 비대면 원격진료 대상이 초진 환자가 아니라 재진 환자만으로 한정됐고, 약 배달도 금지되는 등 규제가  많아 이용자가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환자 스스로가 재진임을 증명해야 하고, 간단한 처방약마저 직접 약국에 가야 하는 등 원격진료 서비스 자체가 번거로워 환자도, 병원도 서비스 이용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원격진료 서비스 업체들은 지난 정부에서 택시 기득권 반발에 밀려 결국 불법 업체로 몰린 ‘타다’와 같은 신세가 돼 사라질 처지다. 이 모든 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애초부터 재진 환자로만 한정하는 등 여러 규제를 안고 시작한 원격의료 서비스의 당연한 결말일지 모른다.

이런 킬러 규제를 없애줘야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데, 정작 정부와 정치권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기존 기득권 세력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소아과에 의사가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즐비한데도,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정원을 절대 늘려선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법조계 기득권은 또 어떤가. 최근 법조계 기득권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대한변호사협회의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 가입 변호사 징계 건이다. 2013년 탄생한 로톡으로 상당수 변호사들이 로톡에 광고를 내고 법률 서비스를 수임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변협은 지난 2021년 로톡 등 법률서비스 플랫폼 이용을 막기 위해 자체 광고 규정을 개정, 변호사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변협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로톡 가입 변호사 123명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징계 처분했다.

징계 처분을 받은 변호사들은 변협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법무부 징계위에 이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당초 3월까지 이 사안을 결정한다고 했다가 이를 3개월 뒤인 6월로 미뤘고, 또다시 연기해 지난 20일 징계위를 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기존 기득권 법무법인들의 이권 대변 단체인 변협을 비롯해 기득권 법조계의 반발 입김이 법무부에까지 미쳤을 터다. 법조계의 이권 카르텔이 어디 이뿐이랴. 전관예우를 비롯한 그들만의 강력한 리그에 정부가 선뜻 나서 개혁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최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가 94세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책 끝 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이를 현 상황에 빗대면 ‘혁신경제와 산업을 짓누른 것은 규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핀트가 어긋난 카르텔 개혁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로 표현할 수 있겠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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