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연금개혁의 시대, 디폴트옵션을 켜라
[전문가 기고] 연금개혁의 시대, 디폴트옵션을 켜라
  • 권용수 삼성증권 은퇴연구소장
  • choa109@seoulfn.com
  • 승인 2023.06.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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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수 삼성증권 은퇴연구소장

2025년 65세 고령인구의 비율이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되고, 2035년에는 이 비율이 3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유래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사회 전반에 여러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생애소득의 일정부분을 대체해 국민들의 기본적인 노후 생활을 지탱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연금은 2055년을 전후해 고갈된다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연금개혁이 노동, 교육과 함께 3대 개혁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연금제도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는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의 3층 체계를 근간으로 한다. 연금개혁은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국민연금의 실효성과 지속성을 강화하도록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변화가 불가피 하다. 그 외에 여러가지 연금체계 보완을 위한 구조적 개선방안이 현재 논의되고 있다.

이런 제도의 큰 변화와 함께 개인들의 연금제도와 연금자산관리에 대한 인식 역시 크게 전환되어야 한다. 먼저 적절한 소비조절을 통해 경제활동기간 중 흑자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축적된 흑자자산의 운용수익률을 최대한 높여서 은퇴 후를 대비한 자산의 규모를 적절히 키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성된 자산을 연금과 같은 현금흐름으로 전환해 은퇴 후 일할 수 없는 기간에도 '평생월급' 처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2년말 기준 퇴직연금 전체의 자산은 331조를 넘어섰고 이 중 DC와 IRP는 140조에 이르는 데, 이 자산의 약 70% 이상이 예금과 같은 원리금보장상품에 편입돼 있다. 장기간에 걸쳐 적절한 자산배분 투자를 통해 연금자산을 크게 늘리고 있는 미국, 호주 등 선진사례에 비춰보면 퇴직연금 가입자 개개인의 관심과 정보부족으로 인해 연금자산 수익률 제고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연금자산의 운용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난해 퇴직연금 유형 중 운용방법(금융상품)을 개인이 결정해 수익률 관리를 직접해야 하는 DC와 IRP에 대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도입했다. 우리보다 앞서 이 제도를 도입한 주요국의 성공사례가 모델이 됐다. 

미국과 호주의 경우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이래 10년여간 연평균 8%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면서 소위 연금부자 탄생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 제도는 작년 7월에 도입돼 법규정비, 관련절차 진행, 전산망 구축과 함께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올 7월 12일에 전면 적용될 예정이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 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디폴트 옵션은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의 4단계 투자성향에 따라 예금과 다양한 글로벌자산배분 펀드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1일 올해 1분기의 디폴트옵션이 적용된 적립금과 41개 퇴직연금사업자의 유형별 디폴트옵션 수익률을 공시했다. 3월말 기준으로 279개의 디폴트옵션이 승인됐는데 이 중 135개가 판매, 운용 중이다. 3월까지 약 25만명이 디폴트옵션 상품에 가입했고, 3000억원의 적립금이 디폴트 옵션에 적용됐다. 전체 대상금액에 비해 아직 턱없이 낮은 비율이지만 수익률은 당초 목표한 연금자산의 장기수익률 제고를 통한 노후보장 강화 일조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다. 운용 중인 상품의 3개월 평균 수익률은 3.06%로, 연 단위로 환산하면 12.41%다. 다만, 단기 수익률로 장기 수익률을 예단할 수는 없기에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추후 연 단위 수익률을 별도 공시할 예정이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초저위험 상품에 가장 많은 약 2500억원의 적립금이 유입됐다. 초저위험 상품의 3개월 수익률은 1.11%다.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이 포함된 저위험·중위험·고위험의 적립금은 약 500억원이다. 3개월 수익률은 각각 2.33%, 3.22%, 4.81%다.

현재 퇴직연금을 서비스하는 각 금융사가 제공하는 디폴트옵션은 지난해 11월 이후 상품 특성에 따라 심의와 승인과정을 통과한 운용방법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의 경우 금리, 중도해지 페널티, 상시가입 가능 여부 등을 살폈고, 펀드의 경우는 과거 운용수익, 자산 배분 현황, 보수의 적절성을 점검했다. 노후보장 강화라는 제도 취지와 성공적인 제도 도입을 위해 원리금보장 상품의 금리는 기존보다 높게, 펀드의 보수는 기존보다 낮춰서 상품이 준비됐다.
 
가입자들이 디폴트옵션을 활용하면 보다 높은 금리의 원리금보장상품과 낮은 보수의 펀드에 가입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만큼, 디폴트옵션 운용성과에 대한 정보를 한 번 더 챙겨서 내게 맞는 운용방법을 꼭 잘 선택해야 하겠다. 공시된 수익률과 함께 장기 운용에 적합한 비용(펀드 보수 등)이 적절한지, 특정 자산운용회사의 상품에 몰려 있지는 않은 지 등을 검토해 선택한다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연금계좌에 잘 준비된 자산은 은퇴 후 연금으로 수령해야 하는 점을 고려해 다양한 연금지급방식을 제공하는 지도 살펴보면 좋겠다.

현재 2023년 1분기 각 금융회사의 디폴트옵션 운용성과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돼 있으며 앞으로도 분기, 연단위의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볼 수 있다. 가입된 퇴직연금사업자의 홈페이지 등에는 디폴트옵션의 구성상품에 대해서도 충분히 정보가 공개돼 있는 만큼 꼼꼼한 점검해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시대 내 손으로 먼저 할 수 있는 연금자산관리 개혁의 첫 걸음은 디폴트옵션을 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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