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후폭풍, “금융권 덮친다”
HP 후폭풍, “금융권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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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판업체 금액 할인에 곱지 않은 시각
금융기관, HP 수의계약에 ‘예의주시’

[서울파이낸스 이상균 기자] <philip1681@seoulfn.com> 한국HP의 납품 비리 사건이 터진 후, 금융권에서도 그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서버를 도입하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HP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입찰이 한국IBM-한국HP 경쟁 구도로 갈 경우, 양사가 경쟁 관계에 있는 만큼 유착이 불가능하지만, 현재 HP의 서버가 도입돼 있거나 수의계약을 통해 단독으로 도입된 경우 얼마든지 이번 사태가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특히 이번처럼 HP가 총판업체에 자의적으로 금액 할인을 한다면, 시스템 품질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서버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일단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이전에 BMT를 실시하고, 업체 선정의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금융기관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도덕성 보다는 서버의 성능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내년 1월 가동을 목표로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 중인 현대증권은 한국IBM과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국HP가 경쟁에서 떨어졌지만, 이번 사태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BMT 및 성능 평가에 대한 최종 결정이 이번 사태 이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HP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곱지 않다. 현대증권 차세대시스템팀 관계자는 “현업에서는 제품의 성능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지만, 계약 단계에 이르면 기업의 이미지도 주요 고려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태가 타 증권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HP의 유닉스 서버를 선정한 농협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농협은 HP와 이미 계약을 마무리 지은 상태다. 농협의 차세대시스템 관계자는 “섣부르게 행동하기 보다는 우선 사태 추이를 좀더 지켜본 뒤에 공식적인 입장을 취할 계획”이라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가장 큰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은 기존 HP의 서버를 사용 중인 금융기관들이다. 증권사 중에는 굿모닝신한증권과 SK증권 등이 그 대상이다.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진행 중인 SK증권의 경우 오는 19일 서버 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IBM과 한국HP가 경합 중이다. 일단 ‘HP사태’의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버 선정 작업은 SI사업자인 SK C&C가 담당하며, 이미 총판업체를 선정해놓은 상태다. 한국IBM은 SK C&C, 한국HP는 SK 네트웍스에 총판을 맡겼다.

SK증권 차세대시스템TF팀 김요섭 팀장은 “이번 업체 선정은 철저히 성능에 기반을 하고 있고, 직접 계약이 아닌 총판 업체를 통하기 때문에 'HP사태'가 미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4년 한국IBM은 우리금융그룹을 대상으로 추진한 800억원 규모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공급 현상이 무산된 바 있다. 당시 한국IBM은 비용 절감 및 효율적인 IT시스템 관리를 위해 장기 계약시스템(OIO)을 제안했지만, 우리금융그룹은 컨설팅사인 AT커니를 통해 ‘거부’ 의사를 통보했었다. OIO(Open Infrastructure Offering)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운영체제 기술 및 컨설팅 서비스 등 모든 한국IBM의 제품과 서비스를 3~5년 단위의 장기계약으로 공급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당시 업계에서는 컨설팅사가 최종 결론을 얻기까지 발주사의 의도를 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IBM의 납품비리사태가 의사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4년이 지난 지금, 한국HP에게도 똑같은 상황이 재발할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상균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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