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워치②] 고종황제부터 ICT까지···135년 통신 역사
[공기업 워치②] 고종황제부터 ICT까지···135년 통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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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정부기관→공기업→민영화 '정보통신 강국'으로
한성전화소 모습.(사진=KT)
한성전화소 모습.(사진=KT)

[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뒤편.

이곳은 우리나 최초의 통신 기관인 한성정보총국이 있었던 곳이다. 한성정보총국은 고종 22년인 1885년 '조청전선조약'을 체결하고 조선과 청 사이를 연결한 '서로전선(인천에서 한성, 청나라로 연결되는 전선)'을 운영하기 위한 전보국이다. 이것이 135년의 우리나라 통신 역사가 시작한 KT의 모태다. 불행히도 9년 후인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군이 서로전선을 점령한 후 해체됐다.

이후 1887년 조선 전보총국, 1910년 통신국, 1923년 경성 무선전신국, 광복 후인 1948년 체신부로 변경됐다가 1981년 체신부(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전기통신공사를 분리, 1989년 주식회사형 공기업으로 전환, 1991년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한국통신(Korea Telecom)으로 사명 변경, 2002년 지금의 KT로 민영화됐다.

왕실 전유물이던 전화는 1902년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인천 사이에 민간통신용 전화가 개통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전화기가 탄생했다. 당시는 전화소에서 교환을 통해 통화를 할 수 있었고 통화 가능시간도 오전 7시에서 오후 10시까지였다. 통화료는 5분당 50전. 당시 차상위계층의 하루 생활비가 5~20전인 것을 감안하면 이틀 치 이상의 생활비를 들여야 5분 통화가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통화이용은 다음 사람이 기다리면 10분 이상 할 수 없었고, 통화 중에 말다툼하거나 저속한 언어, 욕설 등을 하면 교환원이 통화를 중단했다고 전해진다. 

1961년 국내 기술로 탄생한 국산 전화기 1호 '체신 1호'가 탄생, 1970년대 들어서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장거리자동전화(DDD)와 국가 간 통신망을 확장하며 정보통신 인프라가 갖추기 시작했다. 전화보급률도 증가해 1975년 서울시내 전화보급률은 인구 100명당 7.6대로 집계됐다. 전국 전화 가입자수도 100만 회선을 넘어서며 전화는 생필품으로 대중화했다.

서울과 부산간 장거리자동전화(DDD)로 정부 등 관계자들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출처=KT)
서울과 부산간 장거리자동전화(DDD)로 정부 등 관계자들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출처=KT)

DDD 이전에는 교환원을 통해 전화를 할 수 있었는데 DDD 시대가 열리며 교환원을 통하지 않고 번호만 누르면 지방으로 쉽게 전화를 걸 수 있게 됐다. 

1970년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느는 전화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기업 형태의 전기통신사업을 공사화해야 한다는 요구로 정부는 1981년 공사설립을 위한 '한국전기통신공사법'을 제정, 1982년 1월 1일 지금의 KT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A: Korea Telecommunication Authority)를 출범시킨다.

한국통신은 출범 이후 1984년 시외자동전화망, 1987년 전국전화자동화 사업 등을 구축하며 1 가구 1 전화 시대를 열고 본격적인 정보통신시대 진입을 주도했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초석을 놓은 시기다. 이 시기는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과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로 전자와 통신, 반도체 등 ICT 전 분야에 걸쳐 강국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KT는 지난 1일로 창사 135주년을 맞았다. KT는 135년간 우리나라 통신 사업을 이끌어온 국내 최대 통신사로서 글로벌 ICT 시장의 주도권과 특히 세계 최초 5G 상용화 타이틀로 올해 5G 가입 목표를 전체 모바일 가입자의 최대 30% 수준으로 설정하며 5G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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