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서명에도 중요약관 설명 안했다면…대법원, "보증금반환 청구 불가"
고객 서명에도 중요약관 설명 안했다면…대법원, "보증금반환 청구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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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보증금 반환 확약서 서명했지만 약관 설명 증거 부족"
"약관 앞세워 계약 이행하라는 관행 바로잡을 계기 될 것"
"갭투자 성행으로 유사사례 많아 줄소송 전망…조치 필요"
대법원 (서울파이낸스DB)
대법원 (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금융사가 전세 임차보증금 대출에 대해 약관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경우 세입자를 대신해 소유주에게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19일 법조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는 현대캐피탈이 전 주택 소유주인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세입자 C씨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소송'에서 "약관이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사항이라는 점을 인정할만한 근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현대캐피탈은 C씨에게 대출금을 받아야 했으나 돈을 떼이게 되자 당시 소유주인 A씨를 상대로 돈을 받아내려 했으나 결국 이마저도 실패했다.

앞서 현대캐피탈은 A씨가 B씨에게 집을 매도하는 과정에서 세입자 C씨의 임차보증금대출에 대해 알리고, 소유권 변경에 대해서도 회사에 고지해야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C씨가 갚지 않은 보증금대출을 갚으라며 소송을 낸 바 있다.

현대캐피탈은 그 근거로 A씨가 서명한 '질권설정 승낙서 및 임차보증금 반환확약서'를 제시했다.

세입자 C씨가 대출을 받을 당시 작성된 이 서류에는 "임대차 목적물의 매매로 인해 주택의 소유자가 변경될 경우 매매 계약서에 전세자금대출이 취급됐고 질권 설정 내용과 새로운 소유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동 내용을 귀사에 통보하기로 한다"는 약관조항이 있었다.

현대캐피탈 측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객이 약관의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경우 사업자가 고객에게 약관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소유자 변경 통보 의무는 질권설정에 대한 승낙과 달리 집주인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중요한 내용이라 B씨가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캐피탈이 설명을 했어야 하는데 이를 이행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했다고 결론 내렸고,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해당 약관이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항이라는 점을 인정할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또 A씨가 주택을 매도할 때 소유권과 함께 임대인의 지위가 B씨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A씨는 임대인의 의무를 면하게 된다고 판결했다.

이기택 대법관은 "임대주택이 양도된 경우 그 양수인은 주택의 소유권과 결합해 임대인의 임대차 계약상 권리·의무 일체를 그대로 승계한다"며 "그 결과 양수인이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고 양도인은 임대차관계에서 탈퇴해 임차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를 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맡았던 하창진 법무법인 무본 변호사는 "금융사가 서명 받은 약관을 근거로 부실화한 채권를 타인에게서 회수하려 했던 사건"이라며 "금융사가 그동안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약관만 앞세워 계약을 이행하라고 해왔던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금융권에서는 최근 주택시장에서 갭 투자가 성행하고 있는 만큼 유사한 소송이 빈발할 수 있어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세입자나 집주인이 알리지 않는 이상 금융사는 소유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최근 갭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어 집주인이 바뀌는 유사한 상황들이 다수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세입자가 작정하고 돈을 갚지 않을 경우 금융사는 주택 소유주의 고지 의무에 대해 설명한 걸 입증할 방법이 없어 고스란히 돈을 떼일 수 밖에 없게 됐다"며 "금융사가 과도한 책임을 지게 된 셈인데 향후 범죄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임대차보증금 대출에 대한 약관 안내를 강화하는 등 관련 조치가 마련돼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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