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원 얹어 드립니다"…청약통장 불법거래 기승
"천만원 얹어 드립니다"…청약통장 불법거래 기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울 관악구·동작구 일대 전봇대에 붙어있는 청약통장 불법거래 홍보 전단지. (사진=이진희 기자)

복등기 악용 적발 사실상 불가능 국토부도 '난감'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정부 단속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수사가 쉽지 않을 거에요. 청약가점이 높은 통장은 가격을 좀 더 높게 해드릴 수 있어요." (청약통장 브로커 A씨)

정부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청약통장 불법거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청약가점제 비중이 높아지자, 가점이 높은 청약통장의 몸값은 작년보다 더 뛰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곳곳에서 청약통장 판매를 유도하는 홍보 전단지가 발견되고 있다. 정부가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지자체들이 단속에 들어가면서 청약통장 불법거래는 잠시 수그러드는 듯 했으나, 관악구·동작구 일대 전봇대에선 '청약통장 저축·예금·종합 전문상담'이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가 가득하다.

해당 전단지에 전화를 걸어본 결과, 청약통장을 직접 거래하는 브로커들은 문의전화를 중심으로 예비 청약자들에게 청약통장 판매는 물론이고 구매까지 아우르며 거래를 권유하고 있었다.

브로커 A씨는 "청약당첨을 위해 가점이 높은 청약통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며 "좋은 조건의 통장이라면 웃돈을 꽤 얹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브로커의 말을 종합해보면 '좋은 조건의 통장'은 청약가점의 기준이 되는 부양가족 수나 청약통장 가입기간 이외에도 결혼 여부, 나이 등에 따라 가려진다. 가점이 높을 수록 웃돈의 규모가 달라지는 것.

부양가족이 많으면 청약가점이 최대 35점, 무주택 기간이나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길 경우엔 각각 최대 32점, 17점이 책정되기 때문에 부양가족이 많은 무주택자가 긴 시간동안 주택청약을 붓고 있을수록 통장의 가격이 높아진다.

특히 신혼부부 특별공급이 많아진 최근, 무주택자이면서 아이가 있는 신혼부부라면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신혼부부라는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청약통장을 팔 수 있는건 아니다"라면서 "아이가 있고, 무주택자여야 거래가 성사된다. 서울에 거주한 기간도 길면 통장에 들어있는 기존 금액에다 최소한 1000만~1500만원은 더 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불법 거래를 '복등기'를 통해 진행한다. 복등기란 등기를 동시에 두 번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트 입주 전 매매계약을 한 뒤 입주 직후 매도자의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다가 곧바로 매수자 앞으로 등기를 바꾸는 것이다.

복등기를 위한 공증이나 이면계약은 엄연한 불법으로, 주택법에 따르면 청약통장 불법거래를 알선하거나 매매한 당사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과정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계약은 무효처리되며, 알선자와 매매자 모두 10년 이내 입주자 자격이 제한된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강도 높은 처벌에도 심드렁한 표정이다.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데다 불법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브로커의 손을 거치면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래방식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어 불법거래는 전국으로 퍼지는 모양새다.

관리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브로커들의 대담함에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불법거래에 연루된 자들의 엄중한 처벌을 위해 청약통장 불법거래가 많이 이뤄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새로운 거래 수법이 나오면 인지하는데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문에 업계에선 단속과 함께 신고포상금제 강화 등과 같은 촘촘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불법거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며 "브로커의 수익성을 낮추는 방법이나 자진신고한 사람에게 더 큰 포상금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