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예·적금 판매금지"…은행권 'ISA 딜레마'
"자사 예·적금 판매금지"…은행권 'ISA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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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금융사, ISA 관리하는 신탁업체 역할"
경쟁銀으로 예금이탈 가능성…비지주사 수혜 낮아

[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이른바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둘러싸고 은행권이 딜레마에 빠졌다. 신탁계좌로 분류되는 ISA 특성상 은행들은 해당 계좌를 통해 자사 예·적금을 판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로서는 ISA 도입으로 얻게 될 이익보다 기존 예금이 이탈할 가능성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내년 초 ISA 도입을 앞두고 지주사 및 은행 차원에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구체적인 수수료율이 확정되지 않은 데다 세법개정안 국회 통과, 하위법령 정비가 남아있어 아직까지는 사전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은행들은 ISA가 흥행할 경우 금융권 패러다임을 바꿀 '태풍의 핵'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밑그림 그리기에 신중한 모습이다. ISA는 다양한 국민들에게 목돈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본시장 활성화를 꾀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보험을 제외한 모든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서 관리할 수 있고, 5년간 200만원(연간 40만원)의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금융사가 ISA를 터 줄 경우, 해당 계좌에는 자사 원리금보장상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규정은 은행권 입장에서 큰 변수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특정 은행에 방문해 ISA를 만들고 예·적금 상품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면, 신탁업체 역할을 맡은 A은행은 자사 상품을 제외한 타행 예·적금 상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신탁재산과 투자재산이 혼합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상 신탁업체가 자사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은 ISA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며 "예외적으로 투자 금액이 3억원 이상일 경우에는 신탁업체 상품도 가입할 수 있지만, ISA의 경우 세제 혜택 대상을 1억원으로 제한해두고 있어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ISA의 비과세 혜택이 예금에도 적용되면 시중은행들의 수혜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존재했다. 은행의 경우 타업권에 비해 점포수가 많아, 영업점을 찾은 고객에게 자사 상품을 위주로 구성한 ISA 특화 포트폴리오를 권하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계좌의 100%를 예·적금만으로 구성할 수도 있어, 자금을 오래 묵힐 여력이 있는 고소득자의 예금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은행들의 자사 예·적금 상품 판매가 제한된 이상 ISA 가입자를 유치하더라도 이자이익을 내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나마 지주사를 둔 은행들은 계열사 상품을 판매해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지만, 비지주사 계열 은행은 수수료 이익만 바라보고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우리투자증권을 포함해 8개 계열사를 매각한 우리은행이 대표적인 경우다. 반대로 NH투자증권을 편입한 NH농협금융지주는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게 된다.

물론 은행별로 ISA 전용 예·적금 상품을 개발해 신규 고객을 확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은행들은 ISA 관련 TF를 통해 이같은 방안을 검토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상품의 최종 판매를 타행에 맡겨야 해, 영업 전략에 구조적으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ISA 판매 과정에서 자사 예금이 경쟁 은행으로 빠져나가는 것까지 우려해야 한다. 타업권으로의 자금이동 뿐만 아니라 은행끼리의 경쟁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칫 잘못하면 수수료 이익보다 예금이탈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올수 있다"며 "현재 시점에서는 ISA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할 수 없어 지켜보고 있는데, 앞으로 관할 부서에서 여러 변수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신탁재산을 분리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다. 이미 ISA를 도입한 캐나다와 영국도 그런 제한을 둔다"며 "금융사는 자사 상품을 팔기 보다는 투자자가 요구한대로 상품을 신탁해주는 신탁관리 역할을 한다는 게 ISA의 본래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자사 원리금보장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것은 은행만이 아니라 증권사나 보험사도 마찬가지"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은행의 점포수가 증권사나 보험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고, 초저금리로 인해 예·적금 상품의 매력이 떨어진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은행권의 딜레마가 타업권보다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은행들이 이자이익을 내기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 ISA가 비이자이익을 늘리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실제 지난 2분기 은행권의 이자이익은 8조3000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6.0% 줄었고, 비이자이익은 2조5000억원으로 59.5%(1조원) 증가했다. 비이자이익 중에서도 수수료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11.4%(1000억원) 늘고, 유가증권관련이익은 7000억원 증가했다.

다만 ISA의 총 수수료율은 그리 높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퇴직연금계좌(IRP) 등 기존 계좌보다 ISA의 수수료를 더 낮게 책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기존 개인형 퇴직연금계좌(IRP)의 관리 수수료는 연 0.3%다. 이와 함께 금융사가 ISA를 관리해주고 받는 신탁 수수료는 남겨두고, 개별 상품에 적용되는 판매 수수료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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