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약업종의 위기 '自繩自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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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강현창기자] 국내 제약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독특한 경쟁구조를 갖고 있다. 가격경쟁과 기술개발없이 성장세를 지속해왔다는 얘기다. 

국내 제약사들은 주로 유수의 글로벌 제약사에서 내놓은 오리지날 신약을 수입해 팔거나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제네릭(복제약)을 만들어 파는 경우가 대반사다.

게다가 약품의 가격은 시장이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뤄진다. 가격경쟁 없이 리베이트 등과 같은 기형적인 영업활동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신약개발에 적극 나서는 회사도 거의 없다. 지난 1999년 국내 1호 신약이 개발된 이후 12년 동안 단 17개의 국내산 신약이 개발됐다. 이들 제품마저도 투자비용 회수조차 힘든 수준의 매출을 보이면서 제약계의 제네릭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가격과 기술경쟁 없이 '온실속 화초'처럼 자랐던 국내 제약업계가 최근 생사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업체는 단 한곳도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1일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1만4410개 중 7500여개 품목의 약값을 내년 4월부터 평균 14% 가량 일괄 인하키로 하는 안을 고시했다. 의약분업 이후 최대 규모다.

제약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11월 중 하루동안 생산을 중단하고 대규모 궐기대회를 계획하는 등 약가 인하 정책을 되물리기 위해 '사생결단'이라도 하겠다는 태도다. 제약업계는 이번 조치가 강행될 경우 적어도 2조원대의 직·간접적인 매출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가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약가인하 조치 이후 업계 1위인 동아제약은 연간 약 700억원의 매출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 밖에 유한양행 350억원, 대웅제약 600억원, 종근당 450억원, 한미약품 480억원 등 대형제약사들의 매출감소 평균은 8%대에 이른다. 영업이익 감소율은 무려 32%대다.

악재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오는 3월이면 약품의 대량 반품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인하된 가격으로 약을 확보하기 위한 약국의 '예정된' 수순이다. 최근에는 언론을 통해 일부 제약사의 리베이트 문제까지 보도되면서 여론도 싸늘하게 식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 보호 의무 강화조치도 예고돼 있다. 이에 따라 약품의 특허권도 강화될 전망이어서 제네릭 위주였던 국내 제약사들이 설 곳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한꺼번에 터지는 위기를 앞두고 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며 "상당수의 제약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위기는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국내 상당수 제조업체들은 세계시장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시총 1위인 애플과 경쟁하며 세계 IT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자동차업계는 미국과 유럽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건설업계도 중동과 아프리카에 진출해 시장개척의 승전보를 연일 울리고 있다. 몇 년간 기술개발에 힘써온 국내 바이오업체들도 최근 제약업을 대신해 눈부신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다가오는 2012년은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왔던 제약업계에게는 '위기의 시간'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불어 변화를 통해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제네릭 의존과 리베이트 마케팅으로 곰삭아온 제약업계가 환골탈태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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