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바둑에서 '판정승(패)' 이라니…?
헉! 바둑에서 '판정승(패)' 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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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 만들어 놓고 정작 스포츠맨십은 '실종'"

[서울파이낸스 이양우 기자] 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는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바둑팬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로 아시아권을 무대로 하고 있는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해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포함시킨 것은 주최측인 중국의 공이 컸다.

그런데, 주최측의 운영미숙과 함께 판정 시비로 한국 바둑팬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주최 측의 '농간'이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이에, '도'나 '예'를 중시하는 바둑이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는 악영향을 낳지 않을까하는 우려마져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바둑이 스포츠라면, 무엇보다 철저한 스포츠맨십이 전제돼야한다는 게 바둑애호가들의 중론이다.         

문제의 경기는 '혼성페어' 예선전에서 발생했다. '혼성페어'란, 남녀선수(기사)가 짝을 이뤄 순번을 정해 한판의 바둑을 두는 경기방식. 그런데, 20일 치뤄진 한국의 박정환(8단)-이슬아(초단)와 중국의 류싱-탕이간의 혼성페어전에서 일이 터졌다.

광저우 기원에서 열린 예선 2경기인데, 경기 중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중 심판관이 들이닥쳐 한국팀의 '판정패'라며 아직 끝나지도 않은 바둑을 접으라고 강요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 황망한 상황에서 한국팀의 두 선수는 경기장에서 쫓겨나오다시피 하면서, 한 경기를 내주고 분루를 삼키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바둑에서 '판정패'라니. 웬만한 바둑팬이라면 누구라도 기가찰 노릇이다. 바둑 시합에서 승패를 가리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시합 중 한쪽이 열세를 의식해 스스로 돌을 던지는 '불계'로 승패를 가리거나 아니면 최종순간까지 둔 후 '계가'로 승패를 가리는 경우 둘 밖에 없다. 물론, 대개의 경우 '시간제한'을 두고 있어 극히 드믈지만 시간으로 승패를 가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초읽기'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수시로 연출된다. 이밖에, 또 다른 경우가 있다면 '룰'을 지키지 않아 '실격'으로 승패가 갈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날 시합의 경우,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날 시합의 내용은 시종일관 이슬아-박정환 조가 불리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불리함을 의식한 한국팀은 '시간싸움'으로 들어갔다. 이번대회 바둑 혼성페어의 시간제는 양팀 모두에게 45분씩 주어지고, 한쪽이 45분을 먼저 소진하게 되면 경기 내용에 상관없이 패배하게 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들간에 '흔들기'라든가 '시간공격'이라는 말은 너무도 익숙한 단어다. 

문제는 심판관이 판정패를 선언할 당시 양팀에게 남겨진 시간이다. 한국팀은 시간 관리를 비교적 잘 했다. 한국팀의 남은 시간은 4분여 정도. 반면 중국팀에게 남겨진 시간은 1분여밖에 되지 않았다. 순리대로라면, 경기가 제대로 진행돼 우열에 따라 승패가 가려지던가, 아니면 '시간 싸움'으로 승패가 갈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다시말해, 한국팀이 '시간싸움'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에서 난데없이 심판위원장이 끼어들었다. 중국인 심판위원장은 경기 중 이유없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심판위원장 재량으로 경기 내용에서 앞선 중국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바둑에서 초유의 '판정승(패)'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심판위원장의 경기 개입 및 판정은 전날 있었던 대표자회의에서도 알려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느닺없는 패배에 한국은 항의했으나 조직위원회 측에서는 정식으로 제소하라는 말만 남겼다. 하지만, 제소를 하더라도 우리가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미국(옵저버) 심판위원들로 구성된 심판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다루지만, 한국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화교 출신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바둑TV를 통해 이 경기를 해설하던 김영환 9단도 아연하긴 마찬가지. 김 9단은 해설후 강력한 항의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 9단은 시합 바로 전날 알려온 새로운 룰  하나때문에 우리선수들이 손목에 흰 손수건을 매고 시합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최유진 캐스터(진행자)가 우리 선수들이 손수건을 맨 것과 관련 평소의 습관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기위해서라고 말하자, 그는 '그런 것인지 항의의 표시인지 모르겠다'고 말에 뼈를 섞었다.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도 "공지하지도 않았던 룰로 중국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이 시합에 졌다고 해서 박정환-이슬아조가 완전히 탈락한 것은 아니다. 토너먼트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환-이슬아조의 성적은 2승1패. 일본과 태국팀을 제압한 결과다. 앞으로 잘 싸운다면 우승의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팀은 앞으로는 내용에서도 승리하고, 시간에서 승리하는 완벽한 경기를 펼쳐야 하는 부담이 '부담'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경기에서 주최 측의 운영미숙인지 텃세인지는 가늠키 어렵지만, 경기 바로 전날 새로운 룰을 알려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포츠맨십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바둑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중국이 바둑을 스포츠로 인식한다면, 스포츠맨십을 중시하는 '예'부터 생각함이 옳다. 자칭 '大國'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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