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푸틴딸 결혼설과 센세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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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해중 기자]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회의 어두운 곳을 찾아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지식인을 육성하는 데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이유로 글을 쓰는 기자를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권력을 휘두른다는 차원이 아니라, 참된 언론인이 가져야할 책임감 즉 정의구현에 앞장서라는 독려와 의무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요즘 추세를 살펴보면 이런 책임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양심과 정의를 대변해야 할 언론인 스스로 자질이 퇴색한 건지, 아니면 취재경쟁이라는 정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기 때문인지는 명확치 않다.

서두가 이처럼 길었던 이유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막내딸과 결혼설이 났던 윤씨가 지난달부터 근무하던 모스크바 모 법인을 그만뒀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은 점은 '결혼 임박', '친구에서 연인으로' 등의 센세이셔널한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를 떠나 특종경쟁이 앗아간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것이다.

윤씨의 퇴사 배경에 모스크바의 치안 상태와 테러위협을 감안해 안전상의 결정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지만, 실상 세간의 지나친 관심과 도에 넘는 신변노출이 원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내 모 일간지로부터 시작된 상식밖의 특종경쟁이 한 사람의 직업과 사랑의 발목을 잡으며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 셈이다.

물론 몇몇 언론인은 이를 '언론의 자유'라는 포장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서두에서 '저널리즘의 책임감'에 대해 언급했다. 기자가 가져야 할 자유라는 환상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알 권리는 국민 최고의 권리이자 최대의 권리다. 알 권리 앞에서 대부분의 법률은 하위 법률, 종속적인 법률로 전락하게 된다. 예를들어 언론의 보도가 국가기밀을 누설했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정의구현이 전제됐을 때 보장 받는다. 앞의 사례 또한 국가기밀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할 사실이기 때문에 언론인 또한 알려야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윤씨 보도의 경우는 개인적인 사생활을 언론의 선정적인 상업성과 특종 경쟁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보도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머나먼 타국 땅에서 핑크빛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의 연애 스토리가 공신력이 있다고 알려진 일간지의 주요기사로 다뤄진 것뿐이다.

아울러 윤씨가 공인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공인이 아닌 평범한 개인의 사생활을 주요기사로 처리하고 이를 통해 이슈를 만들어내려 했던 일은 도가 넘은 특종경쟁이 불러일으킨 불상사라고 할 수 있다.

인색하긴 하지만 언론은 영웅과 우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도덕적 잣대를 근거로 공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윤씨 사태는 언론의 과도한 역할 때문에 생겨난 비극이다. 관계자가 아닌 이상 무슨 이유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예단할 수 없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상업주의의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아닌 개인사를 낱낱이 파헤쳐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면 이를 과연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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