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어카운트 개선안, 시장활성화 '찬물'
랩어카운트 개선안, 시장활성화 '찬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조치"…효율성·수익성만 악화
지나친 규제, 랩어카운트 상품 실효성 잃을 수도

[서울파이낸스 전보규 기자] 금융당국이 내놓은 개선안이 이제 막 성장기에 접어든 랩어카운트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개선안이 현실과 동떨어졌을 뿐 아니라 랩운용사들의 수입은 제한하는 반면 비용만 늘어나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지난 15일 금융위원회는 집합운용 제한과 보수체계 조정, 투자일임정보 사내공유 제한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투자일임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금융위 측은 펀드와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맞춤형 서비스의 발전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로 이번 개선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개선안이 활성화 초기 단계에 있는 랩어카운트 시장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동일종목에 대한 주문을 한데 모아서 하는 집합운용 규제에 대해 현실을 무시한 조치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집합운용은 각 계좌재산의 일정비율로 특정 증권 등의 취득과 처분에 대한 주문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각각 5억원과 1억원이 들어있는 두 개의 계좌가 있다고 가정할 때 전체 운용자산의 10% 해당하는 금액만큼 S전자 주식을 구매한 후 일괄적으로 각계좌의 10%에 해당하는 5000만원, 1000만원 어치의 주식을 배분하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성향이 비슷한 투자자들의 계좌에 대해 함께 주문을 내고 자산비율에 맞게 나눠 담는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며 "금융위의 개선안대로 하면 과정만 달라질 뿐 각 계좌에 편입되는 종목과 비율은 결국 같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랩어카운트는 일정 비중의 주식 또는 채권 등에만 투자해야하는 펀드와 달리 자산과 비중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구분되고 차별화된다"며 "랩과 펀드를 구분하기 위해서 집합운용을 펀드의 전유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투자자들이 비슷한 성향을 가진 그룹으로 분류되고 최적의 포트폴리오 구성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계좌별로 모두 다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집합운용을 규제하는 것은 효율성만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수석연구원은 "집합운용 규제는 모든 계좌의 주문이 개별로 진행되어야 하며 계좌 포트폴리오가 투자자의 특성에 맞게 개별 관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증권사의 인력, 전산, 제반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수천개의 계좌를 개별관리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집합운용은 계좌별 관리라는 랩어카운트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펀드와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랩어카운트 계좌운용과 관련된 업무를 일임 운용역으로 한정한 조치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 연구원은 "랩어카운트 계좌의 운용, 자산 배분 등과 관련된 업무를 일임 운용역으로 한정한 반면 지금까지 계좌의 자산배분 및 운용에 관여했던 계좌관리인(PB)은 투자권유 등 계좌운용과 관련 없는 업무로 한정한 것은 최대 1만개~15만개에 달하는 계좌를 10~20명의 일임 운용역이 운용 및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향후 집합 주문에 대한 규제까지 적용될 경우 사실상 랩어카운트 상품은 실효성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주가지수 등 기준지표 보다 초과수익이 있는 경우에만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게한 조치도 문제로 꼽힌다.

모 증권사 랩운용부 관계자는 "코스피200을 기준지표로 했을 때 만약 코스피200은 20% 하락하고 랩 계좌는 10% 손실을 기록했다면 기준지표보다 양호한 성과를 냈 것이기 때문에 손실을 내고도 성과보수를 받으라는 의미가 된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금융위의 제도 개선안에 대해 적극 동의하는 의견도 있었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랩어카운트가 집합적으로 운용되는 것은 개인계좌별 맞춤형 자산관리라는 랩어카운트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금융투자상품은 그 구분을 엄격히 하고 본래 목적에 맞게 운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덱스펀드 중에서 지수추종이란 본래목적을 벗어난 공격적인 운용으로 기초지수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달성한 펀드를 추종지수와의 괴리율이 낮은 펀드보다 더 좋은 상품이라고 할 수 없다"며 "상품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용하는 것은 투자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돈만 많이 벌어주면 된다는 식의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집합운용 등 일부조치에 대해 유예기간을 둔 만큼 현실적인 방향으로 조율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 증권사 랩운용 관계자는 "금융위가 일부 조치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두었고 향후 업계의 의견을 청취, 반영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현실성 있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집합주문방식 사용해온 만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합운용 제한은 시행시기를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