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빛 찾아가기
희망의 빛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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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필요해진 인터넷 회선 하나를 해약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가입 권유 전화를 하루에도 몇 건씩 한 달 가량을 퍼부어대던 그 회사가 해약을 하자니 세상에 그처럼 골탕을 먹일 수 있는 것인지 기가 찰 정도로 불편한 요구를 쏟아낸다. 내가 서비스 계약을 한 게 아니라 무슨 노예문서라도 작성했던 것인가 싶은 분노가 치민다. 결국은 해당 회사의 고객 센터까지 직접 찾아가 해약 신청을 했지만 일주일은 지나야 해약이 될 것이라고 한다.

소위 민영화의 혜택을 거의 독점적으로 입었던 그 회사의 터무니없는 불친절을 보며 우리 사회의 서비스 산업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지금 TV, 전화, 인터넷을 한 패키지로 사용하고 있는 집안의 각종 서비스를 동시에 다 해약해버릴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게 됐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어느 마케팅 교재에 실렸다는 실제 사례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미국의 어느 금융회사에서 소액으로 자주 드나드는 통장을 가진 고객들에게 해약을 요구했다고 한다.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수익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로서는 비효율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통장 해약을 하기 위해 금융회사에 들렀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통장이 해약을 요구받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화가 난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거래를 몽땅 다른 금융회사로 바꿔버렸다. 그 아버지는 그 금융회사의 큰 거래 고객 중 하나였다.

이 경우 과연 금융회사는 효율적 마케팅을 한 것인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경영하기보다 경영의 효율만을 생각한 결과가 과연 기업에 이익을 초래하는 것인가. 지금 우리 기업들이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 금융회사의 경우와 비교해서 어떨까.

요즘 세간을 시끄럽게 하는 인사청문회를 보다 보면 이런 일이 비단 기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꽤나 심란해진다. 국민들의 기대와 요구수준은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던 듯 범법자들이 즐비한 인사 내용도 그렇고 그 정도는 문제될 게 없다며 일주일만 버티자는 청와대의 안하무인 태도도 국민 모두가 저들 눈에는 장기판의 졸(卒)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듭 실감하게 만든다.

자녀교육을 내세운 위장전입은 죄도 아니라는 강변으로 이미 위장전입으로 처벌받은 이들을 무참하게 만들고 부동산 투기는 능력 있는 사람의 특권으로 인식하게 강요하고 있다. 군입대 면제자를 신의 아들이라고 비아냥대는 민심이 이제 그 분노어린 체념의 폭을 더욱 넓혀가도록 몰아붙여지고 있다.

정치든 기업 마케팅이든 수요자는 이미 공급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 따라가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사회를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 스스로가 묻고 답을 찾아야 할 단계에 이른 듯하다. 자본의 자유는 갈수록 극대화되고 그 자본의 덫에 걸린 개개인들의 선택폭은 갈수록 극소화해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나갈 이상적 사회로 향하는 길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상화하기는 정부`여당이나 대기업들로만 그치지 않는다. 야당 역시 지난 보궐선거 공천 상황을 보면 도대체 국민을 졸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게 했다. 그러고도 아직 어떤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희망을 보이지 않는 야당이야말로 국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목소리를 모아 여당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워도 힘이 달릴 형편에 저마다의 작은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계파간, 정당간 쟁투에 시간을 소비하는 야당을 보며 대중들이 정치의 미래를 꿈꿀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층이 저지른 실수와 실책들로 인한 민족적 위기를 이겨낸 원동력은 늘 국민 대중들로부터 나왔다. 간단한 예로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선조의 조정은 끝까지 무능한 모습을 이어갔지만 정치와는 먼 거리에 있던 일부 무신들과 의병의 기치를 들고 뭉친 재야 선비와 양민, 나아가 노비들까지 목숨 걸고 적과 싸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IMF 위기 때에도 무능한 정부에 화를 내다가도 결국 아이 돌 반지까지 내놓으며 팔 걷어붙인 것은 시중의 장삼이사였지 잘난 지도층들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희망은 늘 위를 보며 기대하기보다 대중이 스스로 뭉칠 때 그 빛이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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