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8월29일
100년 전 8월29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달력에 부끄러워 할 치(恥)자를 써서 부끄러운 날의 기억을 확실히 명기한 날은 8월29일 국치일이 유일하다. 주권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한 날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그런데 왜 그날 우리가 부끄러운 역사를 기록하게 됐는지를 지금 학생들 대부분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 국사를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과거,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모르는 젊은이들의 당당함이 때로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 뼈아픈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왜 그때 우리는 그런 아픈 역사를 기록해야만 했는지, 어떻게 하다 그런 패배를 겪어야 했는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다시 그런 굴욕을 겪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미움을 대물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계속 당당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실패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고 어느 나라나 자국의 역사를 온전히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핵심과목-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진행되고 역사 교육은 단지 곁가지 교육일 뿐이다. 그나마 세계 속의 한국을 얘기하기에 바빠 세계사 속의 일부로만 한국사를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기에 앞서 영어부터 가르치겠다는 지금의 영어조기교육열풍과도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말 맞춤법이 틀리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영어 발음이 원어민들과 다른 것은 못 견뎌 한다.

그런 시속을 너나없이 좇아가는 세태라고는 하나 그래도 명색이 문명국가라면서 ‘나’가 없이 세계는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주의도 좋고 글로벌 스탠더드도 좋지만 ‘나’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은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번에는 국방부 장관이 군대에서 국민적 자긍심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국사교육을 시키겠다고 했다 해서 말들이 많다. 그런 소동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군대 있을 당시 최전선에서 남북이 마주보며 펼치는 선전방송 활동을 펼쳤던 한 예비역의 얘기가 기억나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 예비역은 서로 같은 시각 상대방을 향해 서로 무언가를 떠드는 데 한동안은 상대편에서 역사를 이슈로 얘길 시작하면 막막해지곤 했다고 당시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끝없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어 얘기하는 저들에 비해 우리의 역사 교육이 너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행여 부끄러운 역사는 감추고 덮어두는 방식으로 교육이 전개된다면 그도 참으로 암담한 일이겠다. 군대라는 특성상 그저 싸워 이긴 전쟁 무용담만 가르친다면 그 결과가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걱정스러워진다. 역사적 사건의 전후 맥락과 인과관계 등을 제대로 성찰해보도록 교육되지 않는 역사 교육은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100년 전 국치일이 닥치기 전 이 땅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가를 되돌아보자. 그때의 악몽이 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인지를 짚어보기 위해.

세도정치로부터 시작된 100여년의 폐쇄적 사회관리 끝에 시작된 개항은 개화파와 쇄국주의자들의 갈등 속에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을 넘어 이 땅을 저들의 전쟁터로 내주는 데에 이르렀다. 1894년부터 2년간 청일전쟁으로 초토화된 땅 위에서 꼭 10년 만인 1904년부터 2년간 러일전쟁이 벌어졌다.

그 이후 나라는 한 번도 정상적으로 추슬러지지 못한 채 을사늑약 10여년 만인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이 이루어진다. 사회 전반은 이미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치욕적인 합방 조약이 강제되는 데도 효과적인 저항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상태가 된 것이다.

내 땅에서 벌어진 남들의 전쟁은 한 사회를 그토록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자마자 민족 내부에서 또 한 차례의 전쟁을 겪고 모두가 비참해졌다. 그리고 60년, 겨우 되살아난 우리 역사를 또다시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것인가. 그래서 전쟁의 위험을 높여가는 호전주의자들이 참 싫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