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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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애신 기자] "연루, 출두, 고발, 압수, 계좌동결". 덜컥 겁부터 나는 단어들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태에서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어떨까. 최근 기자는 전화를 통해 개인 금융정보를 빼내가는 전화금융사기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을 당할 뻔 했고 이과정에서 동원된 단어들이 기자를 당황하게 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는 S은행과 H은행 직원이 연루된 사건이라며, 돈을 받고 대포 통장을 만든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이 사건에는 기자를 포함한 278명의 피해자가 포함됐다면서, 다만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는 좀 더 파악해 봐야된다며 겁을 줬다. 이들은 이미 기자에 대한 모든 개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보유하고 있는 계좌 수, 예치된 금액, 체크카드 유무 등을 세세하게 물어봤다.

특히 이들은 서울중앙지방경찰청과 대검찰청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어디 소속 누구라며 신원을 밝힌 조사관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고, 그 후 검사관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사건은 현재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이 손을 잡고 수사 중이기 때문에, 범인들이 이 사실을 알면 증거를 인멸할 수 있으니 주변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

이들의 대담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기자는 경찰청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 금감원 어느 부서에서 이 사건을 맡고 있는지를 물었다. "요즘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쳐서 의심이 든다"며 떠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경찰청에 전화해서 확인해도 좋다"며 뻔뻔함으로 일관했다.

돌이켜보면 허점도 많았다. '금융감독원'을 '금감원'이라고 줄여 말하면 알아듣지 못한 점, '미래에셋증권'을 '미래에셋저축은행'이라고 말한 점, 녹음해야 하니까 조용한 곳으로 가라고 해놓고 상대방 전화에서는 공사현장 소음이 들리는 점, 말투가 무척 특이했던 점 등...

그러나 분위기라는 것은 때로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 "이래서 알면서도 당하는구나" 싶었다.

나중에 서울중앙지방경찰청 측에 문의해보니, 정부기관이나 경찰청 측에서 전화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계좌 등에 대해서 묻는 일은 없다며 100% 보이스피싱이라고 설명했다. 100만원 이상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경우 전화가 또 올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도 했다. 

보이스 피싱을 통해 개인의 금융정보를 빼가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해 시세를 조종하는 등의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보이스 피싱 예방책으로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동창회·동호회 사이트의 주소록 및 비상 연락망 등의 개인정보파일을 삭제 ▲발신자표시가 없거나 001·080·030 등의 국제 전화번호 받지 않기 ▲녹음 멘트로 시작되거나 현금지급기(ATM) 이용을 유도하는 경우 대응하지 않기 등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또 이미 전화금융사기를 당해 돈을 송금한 경우라면 경찰(1379)에 신고하고, 가까운 은행이나 금감원(02-3786-8576)을 통해 '계좌지급정지'와 '개인정보 노출자 사고예방시스템'에 등록해 추가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개인의 경우 직접 경찰에 신고해야하고, 사건 해결 추이도 직접 확인해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과 절차의 복잡성 때문에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보이스 피싱에 대해 알고 있지만, 보이스피싱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지능적으로 변모해가기 때문에 개인 및 투자자들의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개인들은 보이스피싱에 걸려들지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식을 습득해야하고, 금융당국은 이같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이고 신속한 해결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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