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관치는 없다
'착한' 관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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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관치금융' 논란이 거세다. 지난해 한국거래소 이사장 해임 및 KB금융 회장인선 과정에서 시작된 관치금융 논란은 기획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열석발언권 행사로 한국은행의 독립성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금융권에서는 한국금융의 역사가 수십년 뒤로 후퇴했다는 비아냥 어린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또다른 일각에서는 좋은 관치와 나쁜 관치는 구별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관치에 '좋은' 혹은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타당한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통상적으로 '관치금융'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로 통용되어지고 있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할 경우 자율경쟁에 따른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군부독제 시절에는 정부가 국내 은행의 돈줄을 쥐고 특정 기업들을 상대로 각종 특혜를 제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 기업의 불법거래가 성행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국민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국내 은행들을 '금융회사'가 아닌 '금융기관'으로 인식하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는 점도 관치금융으로부터 파생된 산물일 수 있다. 기업인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초기에는 '관치금융'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었다. 금융위 수장에 과거 유례없는 민간 출신 인사를 기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모피아 출신 인사 대신 민간 출신 인사를 기용해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겠다는 취지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 역시 '관치금융'에 따른 비효율성을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담겨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정부 기조를 뒤바꿔놓았다. 갖가지 금융관련 규제가 도입되고 심지어 민간 금융사의 인사권에까지 관치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규제의 벽을 실감하고 있던 국내 금융사로서는 날개를 펴보지도 못한채 꺾인 형국이다.

시장 자율성이라는 먹이를 먹고 자란 선진 금융사들과 달리 우리 금융사는 규제의 울타리 안에서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규제 강화를 위한 전세계적인 공조 움직임은 선진시장과 신흥시장간 격차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금융안정위원회(FSB)에서 논의되고 있는 각국 은행들의 자본건전성 강화 및 금융사 CEO의 연봉규제 움직임 역시 선진금융사들이 입은 피해를 신흥시장이 나눠지는 형국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시장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는 관치금융에 '착한'이라든지 '좋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을 경우 '관치금융'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관치의 기준이 사안에 따라 주관적일 수 있으며 결과가 좋고 나쁨에 따라 평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1년만에 부활한 기획재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를 놓고 관치금융 논란보다 공조결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좋은 관치든 나쁜 관치든 관치는 시장 참여자들의 복지부동을 초래함으로써 경쟁의 효율성과 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좋은' 관치는 없다. 다만 '정직한' 금융감독당국과 '투명한' 감독, 그리고 금융소비자들과 시장 참여자들을 위한 '효율적인' 정책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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