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기한 넘긴 예산..19년만에 처음
법정기한 넘긴 예산..19년만에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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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안이 4대강 살리기 예산을 둘러싼 여야 간의 정쟁으로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기게 됐다.

헌법이 정한 처리 시한(12월2일)을 불과 하루 앞둔 1일까지도 여야가 예산 심사조차 착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한내 심사 착수조차 못한 것은 19년만에 처음이다.

내년에도 예산을 조기 집행해 경기 회복의 탄력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를 가진 정부로선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신규 사업은 물론 지원기준이 변경된 각종 서민예산의 집행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 파행 국회..7년 연속 헌법 어겨
여야는 2일 예산안 공청회를 개최하고서 3일 간사회의를 통해 국회 예결위 예산심사 일정을 협의키로 한 상태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이 지나고 나서야 일정 협의가 시작되는 셈이다.

역대 법정 시한 후 예산안 심사가 시작된 것은 1990년 단 한 차례뿐이었다. 당시 지방자치제법 도입을 둘러싼 여야 간 극한대치가 계속되면서 12월11일 국회 예결위의 심사가 시작됐고, 심사 일주일 만인 18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됐다.

1989년 이후 20차례 예산 심사에서 시한 내에 처리된 경우는 1992년, 1994년, 1995년, 1997년, 2002년 등 5차례에 불과하다.

특히 2003년부터는 예산안이 제때 통과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어 올해까지 포함하면 7년 연속으로 예산안 처리시점을 정한 헌법을 어기는 위법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예산안 처리시점도 근래에 올수록 늦어지고 있다. 1999년 이전에 예산안이 가장 늦게 처리된 것은 1989년으로 12월19일이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12월 27일 이후에 처리된 경우가 7번이나 됐고, 2004년에는 마지막 날인 31일 밤에 처리되기까지 했다.

작년의 경우 전대미문의 국제 금융위기에 따른 국민적 우려가 반영돼 그나마 평년보다 빠른 12월 13일 처리됐다.


◇ 민생예산 집행 차질 우려
예산안 확정 이후 정상적인 집행 준비에만 30일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산안 처리시점이 늦어질 경우 겨울철을 맞아 한시가 급한 서민 예산의 집행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예산 확정 이후 국무회의 의결 등 예산 배정계획 수립 준비에 7일, 예산 배정 이후 사업 공고와 계약 체결에 평균 15일, 자금 배정에 7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예산은 2007년 12월27일에 확정돼 2008년 12월13일 확정된 2009년 예산과 달리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을 추진하지 못했고, 최초 자금 배정도 2009년보다 10일이 늦어져 전반적인 사업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사회 인프라(SOC) 사업은 2009년과 비교해 지출이 한 달 반 이상 늦어지고 실제 자금집행은 두 달 이상 지연됐을 정도다.

올해 예산의 경우도 예산안 처리가 12월 말까지 늦춰지면 서민생활과 관련한 예산의 적기 집행이 힘들어진다.

일례로 장애아동 재활 치료의 경우 개정 지침 시달, 신규 대상자 선정 등에 최소 30일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특히 바우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경우 대상자 선정 이후에도 바우처 포인트 생성, 카드 발급 등에 10일이 추가 소요돼 예산안의 적기 통과가 절실하다.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 경감을 위해 2010년 1학기부터 시행 예정인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정상적인 운영도 곤란해질 우려가 있다. 채권 발행 등 대출 준비에 50일이 소요돼 예산안이 늦게 확정되면 내년 2월 대학 등록기간에 등록금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시설과 노인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시설 개.보수 및 신.증축도 예산 배정 지연에 따라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 일자리(8만2천명), 노인 일자리(17만2천명), 사회서비스 일자리(14만명) 등 일자리 사업도 예산안 통과 없이 공모, 근로계약 체결 등 사전절차를 연내 진행하기 어려워 취약계층의 생계불안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아울러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지연으로 연초 민간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들이 자금 조달로 애를 먹을 가능성도 있다.


◇ 정부 "경기회복 동력 떨어질라"
정부는 예년과 달리 올해만큼은 예산안이 시급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국제 금융위기를 딛고 살아나기 시작한 경기 회복의 불씨를 이어가야 하는 시기적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경기 회복 차원에서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바람에 4분기 집행예산이 전체 1년 예산의 16.1%(44조 원)에 불과할 정도로 재정적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내년에도 조기 집행을 위해선 예산안의 조기 통과가 필수적이라고 설명이다.

더욱이 작년 12월 예산 통과 후 11조7천억 원의 예산을 회계연도 개시 전에 배정했던 정부로선 올해에는 더 많은 예산을 회계연도 개시 전에 배정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라도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

정부는 국회의 심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최대한 조기에 통과되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주까지도 처리 시점의 가닥을 잡지 못하면 예산안 처리 지연에 따른 정부 차원의 비상계획 수립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정부 예산안 확정이 늦어질 경우 광역단체는 12월17일, 기초단체는 22일까지 예산을 확정토록 한 지방자치법을 위반할 공산이 크다. 설령 기한 내에 정부안에 근거해 예산을 확정하더라도 국회에서 변경된 사항을 재반영하기 위해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을 다시 편성하는 행정적 낭비가 초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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