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자본규제법(?)
자본시장법=자본규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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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선현 기자]"자본시장법 시행 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규제는 더 늘어났고 금융당국의 압박은 더 심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 동북아 금융 허브를 목표로 규제 완화를 지향하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A증권사>

자본시장법이 시행된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런데 법 시행을 목 빼고 기다려왔던 증권사들의 태도가 예상밖이다. 겸영이 허용되면서 지금쯤이면 신규사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어야 하는데 당초 기대와는 달리 업계는 잠잠하기만 하다.

금융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사업 인가가 나지 않으면서 시장 진출이 가로막힌 탓이다. 생존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리스크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신중론으로만 일관하는 당국의 태도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자본시장법 시행이후 이달까지 증권ㆍ선물ㆍ자산운용업 간 업무 겸영과 관련해 5개 증권사만이 선물업을 겸영(장내파생상품 투자중개·투자매매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당초 10여곳 이상의 증권사가 신사업 인가를 받으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 당국으로 부터 '퇴짜'를 맞은 것이다. 3개월이면 인가가 완료될 사안도 증권사는 5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후문은 증권업계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태도를 짐작케한다.

이에따라 증권사들의 신사업에 대한 초기 비용은 늘어날 수 밖에 없고 금융위기로 인해 '실탄'이 부족한 증권사들은 쓰린 속을 달래며 새 사업을 포기해야할 지경이다. 심지어 신사업에 대비해 인력을 충원하고 조직을 정비한 증권사의 경우엔 인가 지연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 오히려 부담이 늘어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신사업 인가에 소극적인 이유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증권업계의 수익기반이 약화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영업환경에서 무분별한 시장 진입이 이뤄지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까지 연쇄적으로 쓰러져 '레드오션'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는 당초 정부의 취지와는 정 반대되는 논리다. 2007년 말 금융당국은 증권사 간 경쟁 촉진과 대형화를 꾀하기 위해 2000억원의 자기자본을 가지고 있다면 증권사 설립 인가를 내주겠다는 시행령을 발표했다. 자율경쟁을 통한 '대형화'를 유도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탄생시키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2년만에 정부의 태도는 돌변했고 상당기간 동안 인력, 네트워크, 시스템 등 관련 인프라를 준비해 온 증권사들은 속만 애태우고 있는 현실이다.  당국의 눈치에 반항(?) 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다.

물론, 자본시장법시행 효과를 논하기에는 다소 이른감이 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금융 정책에 일부 수정이 불가피했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확장'과 '안정'의 조율 과정 속에서 다소 인가가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는 그들의 항변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시장에서는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과 체제 정립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제 정부의 역할은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상당부분 해소되는 상황에서 보다 유연한 정부의 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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