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회장과 '글로벌 플레이어'
황 회장과 '글로벌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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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제재가 최종 확정됐지만, 이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이번 사안은 불행한 개인사로 귀결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국내 금융시장의 분위기마저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배가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은행들은 해외시장 개척보다는 역내 경쟁을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해외로부터 무리하게 단기자금을 끌어와 주택담보대출 경쟁에 나서며 금융불안을 심화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말 일부 국내 은행들은 때아닌 파산설에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금융당국까지 나서 "국내 은행들은 여타국 은행에 비해 건전성이 양호하다"고 항변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주가는 곤두박질 쳤고 은행의 신용도를 나타내는 CDS프리미엄은 급격히 악화됐다.

개별 은행의 파산설은 과거 수십개의 금융회사가 문을 닫았던 IMF 사태에 기인한 심리적 영향이 컸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라는 국내 은행에 대한 낮은 신뢰도가 파산설에 불을 지폈다. 특히 우리은행은 황 회장 재임 시절 이뤄진 파생상품 투자손실로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금융당국은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은행을 위험에 빠뜨린 책임이 황 회장에게 있다고 보고 유례없는 중징계를 확정했다.

황 회장이 받은 '직무정지' 제재는 향후 4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자격을 제한한다. KB 회장직은 유지할 수 있지만 연임 가능성은 사라진다는 얘기다. 표면적으로는 1~2년 공백기간을 명한 셈이지만 과거 유례가 없는 중징계는 금융인사로서는 '즉결처분'이나 다름 없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우리은행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예금보험공사도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황 회장으로서는 명예실추는 물론 금전적 피해까지 걱정해야할 상황이다. 징계를 받은 황 회장에게는 재심청구 및 행정소송이라는 법적대응 카드가 있지만 승소하더라도 '금융당국에 반기를 든 인사'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 공기업은 물론 민간 부문에까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금융사 임원으로의 내정 기회마저 박탈당할 수 있다.

사실 황 회장 역시 현 정권과 인연이 닿아 있어 일각에선 '낙하산 인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현 정부의 인수위 시절 경력 때문인데 황 회장으로서는 이같은 인식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는 '황 회장이 현 정권의 실세인냥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감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황 회장이 낙하산 인사인지 여부가 명확치 않듯 관료들의 판단 역시 근거가 불명확 하다.

현 정권의 실세가 유례없는 중징계를 받을리 만무하다. 오히려 금융당국의 의중에 반하는 '눈치 없는' 행보가 이같은 인식의 발단이 됐다는 분석이 차라리 설득력이 있다. 황 회장은 지난해말 KB금융 취임 직후 여타 금융지주와의 대등합병 및 증권사 M&A 발언 등으로 금융권의 대표 '이슈 메이커'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이는 황 회장 특유의 성향일 뿐 관료들의 판단과는 상당부분 괴리가 있다. 결국 언론 친화적 성향이 부정적 인식의 발단이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징계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이번 사안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놓인 국내 금융시장에서 '보신주의'로 점철된 경영행태가 고개를 들 경우 우리 금융시장은 '마이너리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같은 징후는 벌써 감지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대형 은행들이 금융위기를 발판 삼아 해외 글로벌 금융사들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은행들은 당국의 따가운 눈총에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우리금융지주가 선진금융기법 도입을 목적으로 블랙스톤 투자에 나섰다가 철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은행권의 IB(투자은행) 업무도 사실상 마비상태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도 수십·수백조원의 구제금융을 쏟아부은 자국 금융회사의 임직원들을 중징계 하는 사례는 없으며, 오히려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감독시스템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겉으로는 해외진출을 독려하면서 원칙없는 제재로 국내 IB의 고사화(枯死化)를 부추기고 있는 금융당국의 이율배반적 행태가 지속되는 한 한국형 '글로벌 플레이어'의 출현은 한낮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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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2009-09-12 20:54:44
1조6천억은 너무했다...

무명씨 2009-09-12 08:01:22
제대로 된 리크스관리시스템도 갖추지 않고 대부분의 은행들이 겁내던 위험천만한 상품에 무모하게 투자하도록 하여 고객의 예금으로 운영되고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은행에 천문학적 손실을 끼친 책임자를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제재한 것이 국내금융시장 발전에 해가 될까요? 아니면 득이 될까요? 시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