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면 동지 못되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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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민규 기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만 해도 세계 최대의 보험그룹이었던 AIG는 이제 각 사업부문이 분리·독립돼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사실 좋게 말해서 분리·독립체제지 실상은 분리된 사업부문들이 미국 정부의 소유로 넘어간 셈이다. AIG의 생명보험 부문인 AIA와 손해보험 부문인 AIU가 각각 특수목적회사(SPV)로 이전됐는데 이 특수목적회사의 대다수 지분을 미연방준비은행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하 사업부문을 특수목적회사로 분리한 이유는 간단하다. AIG가 미국 정부로부터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다. AIA는 당초 매각작업을 진행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상장으로 방향을 바꿨고 AIU도 상장 등을 통해 지분매각을 꾀하고 있다.

즉 분리·독립도 상장도 다 돈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 고객을 위해서라거나 투명한 경영체제 확립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도 그들은 고객을 위한 거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단지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일 뿐이다.

최근 사명을 AIA생명으로 변경하고 새 기업이미지(CI)를 공개한 구 AIG생명은 사실 원래 국내 상호명이 AIA였다. 구 AIG생명은 홍콩AIA의 한국지점이었다. 물론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내에서 AIG 브랜드를 사용함으로서 세계 1등 보험그룹이라는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노렸다.

그러던 것이 AIG가 금융위기로 몰락해 1825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이젠 AIG 브랜드를 재빠르게 떨쳐 버린 것이다.

AIA생명은 이번 사명 변경이 AIA그룹의 브랜드 통합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꽤나 구차한 설명이다. 지난 2000년 이후 9년간 AIG 브랜드를 사용해오다가 이제 와서 느닷없이 브랜드 통합의 의지가 불타오른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한마디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역' 중 하나인 AIG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새로 발표된 AIA생명의 광고에도 AIG가 언급된 내용은 없다.

물론 이 같은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아무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해도 금융사라면, 더군다나 공익성이 강한 보험사라면 무엇보다 고객의 입장을 우선시해야 마땅하다.

본사가 부실해졌다고 냉큼 브랜드를 바꾸는 건 고객 입장에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또 AIG 사태가 막 터졌을 때 AIA생명(당시 AIG생명) 등은 국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며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데 힘썼다. 하지만 현재 무산되긴 했지만 당시 AIA는 매각작업에 들어갔었고 지금 상황만 봐도 국내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무엇보다 AIA생명은 국내 진출 후 줄곧 지점형태로 영업을 해오고 있는데 국내 시장점유율이 10위권 안임에도 불구하고 법인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 역시 고객보다는 자신들의 이득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법인으로 전환하면 국내법상 여러 제약이 따르지만 지점형태의 경우 상대적으로 제반 규정들에 자유롭다. 자연히 책임이나 의무도 줄어든다.

진정 고객을 위한다면 마땅히 져야할 책임은 지고, 보다 고객들에게 솔직해지고, 고객을 기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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