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외면하는 성장의 망상
가난을 외면하는 성장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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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이냐, 죽봉이냐 혹은 만장대냐’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노동계가 저마다의 잣대를 들고 소란하다. 만장은 1980년대 숱한 생명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우리 사회 시위문화의 한국화한 상징물이다.

70년대에는 거리로 반정부 시위를 나서는 대학생들도 검은 리본을 다는 수준의 항의 표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고문으로, 혹은 시위 도중에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희생자들의 사회적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또 하나의 시위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장례식에 우리의 전통 장례식에서 들던 만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게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가 긴 대나무 몇 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진정한 이유는 생존불안으로 기층으로부터 차오르고 있는 불만이 두려운 것일 터이다. 그런 관측을 뒷받침할 숫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2008년의 도시가구의 지니계수는 0.325포인트로 1년 새 0.001포인트 상승했다고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자료가 밝히고 있다. 지니계수 0.35포인트면 소득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로 평가되며 지난해 한국이 기록한 0.325포인트면 상당히 불평등한 단계로 풀이된다.

올해 더욱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특히 일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들의 일자리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신규 고용은 늘지 않아 적체된 실업자군은 갈수록 늘고 그간 한계상황을 견뎌내던 중소기업들은 감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시종 뜬구름만 잡으려 버둥대는 양상이다. 정부가 집권 첫해에 맞닥뜨린 경제위기를 앞에 두고 시급히 수백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사업을 두고 두 세 개 부처가 저마다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밝혀 정부의 일자리대책은 처음부터 2~3배로 부풀려졌다.

그러자 4월중 세부계획을 발표하겠다던 정부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즉, 현재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말 그대로 무대책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기존 일자리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엉뚱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며 지니계수가 늘어나는 것은 서민들의 벌이가 시원찮아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서민들의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도 부자들의 돈벌이는 더 수월해져 돈이 돈을 버는 재화의 자가 증식 상태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노동 소득은 고작해야 제자리걸음이고 아예 소득원이 끊겨버리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자산가들의 소득을 지켜주려는 정부의 노력은 눈물겹다.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제도금융권의 금리를 거듭 내리고 수출 촉진을 위해 환율은 계속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글로벌 달러 약세 속에서도 한국 시장에서는 유독 원화 대비 달러의 강세가 지속된다. 그렇게라도 기업 활동이 활발해져 일자리가 창출되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금리의 혜택을 입는 대기업의 국내 일자리 창출 가능성은 극히 낮다. 중소기업은 악착스레 벗겨 먹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은 감원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정부가 앞장서서 노동자의 주머니 터는 일에 힘을 보태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정부 노력에 화답하듯 시중 유동성은 과잉상태를 보인다. 지난 4월 말 현재 시중 단기자금이 811조3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서만 63조원이 증가한 수치다. 부동자금은 또다시 부동산시장으로 몰려가며 거품의 위험을 예고한다.

금시장에도 적잖은 돈이 들어가고 그로 인한 금 밀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금시장에서 거품이 일어도 서민들에게 직접적 타격을 미치지는 않는다. 증권시장도 기업들의 맥 풀린 경영 상태로 제자리걸음이나 진배없는 상태로 보인다.

그에 비해 부동산 시장은 벌써 투기지역을 중심으로 ‘바닥을 쳤다’며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강남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몰리기 시작한 부동산 투기자금들 덕분에 급매물들이 거의 소진되다시피 했다는 점은 차라리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는 가격 상승이고 생활불안이 다소 덜한 서민계층에선 주거불안이 새롭게 끓어오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왜 만장이 죽봉이 되고 죽창이 되어 보이는지를 아는 정부의 반응이 아무리 보아도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래로부터 민심이 들끓을 징조가 보일 때는 맨 밑바닥 상태부터 들여다보는 지혜가 고래로부터 요구돼온 지도자의 필수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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