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의 추억
노사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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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은 지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나를 버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며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그의 가족들이, 측근들이 이미 줄줄이 비리로 엮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무죄라거나 하는 섣부른 변명을 할 자료도 없고 또 그럴만한 현실적 힘도 갖고 있질 못하다. 그러나 그를 옭아매는 그물이 조여들수록 오히려 그 그물을 던진 쪽을 꼼꼼히 관찰하고자 하는 열망이 커지니 참으로 희한하다.

이런 현상이 필자만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마도 필자의 어린 시절 개인적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색당쟁이 다 사라진 줄 알던 시절이었음에도 남인 집안임에 자긍심을 지켜온 한 소종가의 종손이었던 할아버지는 종종 어린 필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무릎학교를 통해 역사를 알게 해주신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존경스러운 인물로 배워온 몇몇 인물에 대해 영 다른, 때로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곤 하셨던 것이다.

그런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역사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그 역사를 다루는 이들의 해석에 따라 매우 다양한 판단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수많은 당사자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하나의 사건을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받아들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 특히 정치판의 모습은 아직도 갈길이 멀어 보인다. 사색당쟁이 끝내는 온 집안의 운명을 건 죽고살기 싸움으로 번져간 조선 중기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싶어서다.

어쩌면 정치적 몰락이 죽음으로 마감하고 마는 고대 신화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세계적 신화학자인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 첫머리에는 사제의 왕이기도 한 숲의 왕 교체의 관습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숲의 왕 앞에 놓인 길은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면 목숨을 건 싸움을 통해 그 직위를 지켜내거나 아니면 죽어서 그 직위를 놓는 것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실상 정치인 노무현은 그 출발부터 숲의 왕 탄생 과정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이제까지 정치인 노무현을 이끈 힘의 절반은 열정적인 그의 지지자들이었다. 2002년 말 대선에서 노무현 붐을 일으킨 것은 정치자금을 풀어 가동할 수 있는 제도정당이기 보다 노사모라는 조직 아닌 조직이었다. 노사모는 매우 느슨한 개인들의 연대조직으로서 정당보다는 사회단체의 형태에 가까웠다.

정치지망생이 아닌, 참여민주주의를 향한 순수한 열망으로 생기는 것 하나 없는, 오히려 제돈 쓰며 고생하고 뛰어다니는 그 발랄한 청춘들의 축제는 울타리 밖에서 구경하는 기성세대들에게도 신선한 바람을 공급했다. 인터넷이 주된 무기라면 광고 카피를 능가하는 산뜻하고도 감성에 호소하는 갖가지 구호들은 인터넷을 채우는 총알이었다.

선거가 모처럼 신나는 축제의 장이 된 것이다. 그 선거 축제의 양식은 두 개의 뿌리에서 나와 하나로 만난 연리지 나무를 연상시킨다.

그 하나는 누구라도 쉬이 생각할 수 있는 2002년 그해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벌어진 한`일 월드컵이었다. 젊은이들이 붙인 뜨거운 응원 열기는 곧바로 전 국민적 열정으로 옮겨 붙었다. 그 2002년 여름의 열정은 실상 일회성으로 그칠 수도 있다고 예상됐지만 그 해 말 선거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정치인과는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내 돈 들여가며 열정을 갖고 선거전에 뛰어드는 젊은이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앞서 2.12 총선에서 이미 싹을 보였다. 학생운동 전력 뿐 정치적 경력은 물론 선거자금 한 푼 없던 한 정치신인은 그를 위해 뒤에서 이름도 드러내지 않은 채 주변 사람들을 쫒아 다니며 열정적으로 홍보하고 다니던 수많은 학생들의 힘을 받으며 그 선거에서 최고 득점을 기록했었다.

그처럼 열정으로 축제로 이어져온 젊은이들의 정치적 관심이 이제 타버린 재처럼 힘없이 부서져 날아가고 있다. 한 정치인의 몰락보다 더 가슴 아픈 정치현실이다. 그래서 비리의 진실 여부를 넘어 한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노무현과 그의 대척점에 선 이들을, 그들이 그려낼 파장을 좀 더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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