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계 목소리에 귀막는 금융당국
증권계 목소리에 귀막는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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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상균 기자] 금융업 중에서도 증권업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증시상황에 따라 유연한 사고와 기민한 대처가 필요한 것이 이 같은 개방적인 사고를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 이상균 기자
취재를 하면서도 증권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가감 없이 의견을 개진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항상 부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익명으로 처리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유인 즉슨,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에게 찍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기사에 실명으로 나가 회사차원이나 혹은 개인차원에서 불이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다 큰 어른이 마치 초등학교에서 선생님 눈치나 보는 학생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업은 전형적인 규제산업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에서 정해놓은 규제가 워낙 많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을 만든 이유가 이렇게 현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일반 사람들도 흔히 들어갈 수 있는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금융위는 “건전성, 신용성,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금융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서비스에 관한 주요 사항을 최종결정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 등의 수행을 통해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나온다. 금융위나 금감원이나 공통적으로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금융수요자를 보호한다”고 포함돼 있다. 그 어디에도 금융업 종사자의 의견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라는 말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최근 증권사의 소액지급결제망 참가비를 놓고 금융결제원과 증권사들은 옥신각신하며 입씨름을 했다. 금결원이 회원사인 은행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참가비를 200~300억원으로 책정한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증권사들은 기준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며 반발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독당국에도 호소를 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때를 전후해 증권사들 사이에서는 감독당국이 로비력 강한 은행의 손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만큼 증권사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그만큼 감독당국이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업의 신뢰가 없는 마당에 감독당국이 내놓은 정책이 아무리 좋다한들, 좋은 평가를 받을 리가 만무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막상 그 성과물에 대해서 혹평을 받는 셈이다. 의욕이 날래야 날 수가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악순환을 깨기 위해선 감독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 감독당국은 금융업 관계자들의 말에 좀더 귀기울이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한 현실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공무원이라는 갑의 자세를 버리고, 눈높이를 낮추는 적극적인 자세다. 더불어 감독당국과 현업 관계자들이 좀더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이 수시로 마련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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