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셰어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잡 셰어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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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종헌 기자
[서울파이낸스 전종헌 기자] 최근 정부에서 공공기관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20% 삭감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재원을 인턴사원 채용을 비롯한 일자리 나누기 즉 ‘잡셰어링’에 쓸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금융권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잡셰어링 재원 마련이 고액연봉을 받는 위로부터의 자발적 임금 삭감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강제적 임금삭감인데다 이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도 정규직이기 보단 인턴 등 계약직이 많아 땜질식 일자리 부양정책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의 잡셰어링 캠페인에 기업은행이 선봉을 섰고 곧 이어 우리은행도 동참하기로 했다.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금융기관들이 속속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신입행원들의 초임을 3천4백만 원에서 20% 삭감해 신입행원 한 명당 7백만 원의 잡셰어링 재원을 마련, 신입 행원과 청년 인턴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얼핏 보면 어려운 시기 고통 분담을 통한 좋은 정책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고액 연봉을 받는 고위간부들의 고통분담은 덜한 편이다. 한국 사회의 실상이 늘 위로부터의 희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희생이 강요되는 현실이 매번 되풀이 되는 고질병임을 목격하게 된다.

일자리의 질도 어설프다.

정말 구직자를 위한 잡셰어링을 한다면 인턴이 아닌 한명의 구직자라도 안정된 고용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제공돼야 할 것이다.

구직자들은 인턴이나 비정규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청년 구직자의 말이 떠오른다. "구직을 위해 서울 살이 2년 만에 쌓을 수 있던 것은 아르바이트 경력과 생활고로 생긴 대출이자뿐"이라고...

불황의 여파로 청년 구직자들은 오늘도 인터넷 취업 정보 사이트를 방문해 이력서를 넣고 있다. 온통 계약직, 인턴사원으로 도배된 고용 시장에서 구직자들이 높아진 교육수준과 기대치에 맞는 직장과 직업을 찾기란 어렵다.

근본적으로 구직자를 위한 채용이 아닌 당장의 필요에 의해 일자리들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 한 두 달 만에 직장을 옮기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취업은 전쟁이다. 전쟁터가 된 필드에 구원자로 나선 정부의 대책이 너무 아마추어적이다. 전쟁엔 아마추어가 없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아 이 시대의 청년 실업자들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시중 은행들이 잡셰어링에 나서면서 저축은행, 캐피탈 사들도 속속 청년 고용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중 은행권 대비 규모면에서 작을 뿐더러 경기 침체로 경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중소 업체들이 정부의 정책에 못이긴 척 내놓은 고용 정책은 일자리의 질적 향상보단 전시 효과적 ‘양적 팽창’에 그치고 있어 잡셰어링은 원래의 취지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특히, 계약직과 인턴을 정규직 대비 많이 채용하는 것은 일반화된 일이지만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새로운 영업 인력 필요와 불확실한 사업성을 염두에 두고 비정규직 채용에 치중해 구직자들을 불확실한 시장의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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