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환율정책 '오락가락'…사실상 '백기'?
재정부, 환율정책 '오락가락'…사실상 '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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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 개입'에서 '고환율 용인'으로 입장변화

[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원·달러 환율이 11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외환시장이 극도로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재정부의 환율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틀만에 고환율에 대한 입장을 뒤바꾸면서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위기관리대책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환율 문제는 잘만 활용한다면 수출 확대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사실상 고환율을 용인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날 윤 장관의 발언은 지난 주말 '외환보유액 2천억달러선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입장과 상반된다.

지난 주말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심리적인 면 때문에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일부 있지만, 외환보유액은 전액 사용가능한 것으로 비상시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주말 기획재정부의 발표는 한국은행과의 의견 조율 이후에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시장은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정부의 구두개입 효과는 지난 23일 단 하루에 그쳤다. 윤 장관 취임 후 열흘만의 하락세였지만, 이마저도 정부의 구두개입 효과라기보다 9일 연속 상승한데 따른 기술적 반락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동유럽 국가의 디폴트 우려와 그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세를 감안하더라도 환율 상승폭이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새 경제팀의 외환시장 구두개입이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시장 일각에서는 지난 주말 발표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의지가 '구두'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새 경제팀의 외환시장 구두개입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주축으로 한 초기 경제팀이 시장의 신뢰를 져버린 데 따른 영향이 일정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 전 장관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차례에 걸쳐 고환율에 대한 입장을 뒤바꿨으며, 결국 환율도 못잡고 외환보유액만 축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보유액 2천억달러 마지노선'도 이 때 만들어졌다. 새 경제팀이 2천억달러에 연연해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도 기존 경제팀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두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새 경제팀 역시 상반된 입장을 동시에 내비치면서 환율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 정부의 환율 카드를 모두 내비쳤던 강 전 장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중이 엿보이지만, 단 이틀만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뒤바꾼 것 역시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정부의 입장변화에 대한 배경에 쏠리고 있다. 당초 '국채을 팔아서라도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단언했던 외환당국이 '고환율 용인'으로 입장을 뒤바꿨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외화유동성이 취약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유동외채 비율은 96.4%로 10년만에 최악의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외채비율은 유동외채를 외환보유액으로 나눈 것으로 유동외채는 단기외채와 1년 이내 장기외채를 합한 것이다.

유동외채비율이 100%에 가깝다는 것은 1년 이내 갚아야할 외채가 외환보유액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이 비율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157.4%였지만 2004년 38.6%, 2005년 41.1%, 2006년 56.1% 등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유동외채비율이 조만간 100%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
결국 윤 장관의 고환율 용인 발언도 대외지급 능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데 따른 고육지책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환보유액 2천억달러 마지노선 붕괴는 곧 유동외채비율 100% 초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환보유액은 지난해말 현재 2012억2천만 달러로 전년말 대비 23.3% 줄어든 반면, 유동외채는 1939억6천만 달러로 같은 기간 4.9% 감소하는데 그쳤다. 유동외채보다 외환보유액 감소폭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외환시장에 '백기'를 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IBK투자증권 윤창용 이코노미스트는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300~400억달러 가량이 미국의 모기지증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환율개입 여력은 더욱 떨어진다"며 "외환당국이 환율정책에 대해 상반된 신호를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개입여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확대를 통한 환율의 장기적인 하향 안정세는 기대해 볼만 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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