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발주…“당장은 달지만”
통합발주…“당장은 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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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상균 기자] 지난 주 IT업계는 오랜만에 나온 대형 프로젝트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우정사업본부가 1,000억원에 달하는 IT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이다. 지난 6일 개최된 투자설명회에는 400여명에 이르는 IT업체 담당자들이 모여 한껏 달아오른 열기를 뿜어냈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프로젝트에 굶주렸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최근 IT경기의 불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기대를 모았던 MB정부의 출범 이후, 정보통신부가 사라지고 정부의 관심이 건설토목에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IT는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IT시장의 양대 축이었던 공공시장의 프로젝트 발주가 급감했다.

작년 상반기에 발주될 예정이었던 IT프로젝트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공공시장 의존도가 높았던 IT업체 중에서는 존립 기반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금융시장 역시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차세대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는 사태를 맞았다. IT업계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발주된 우정사업본부는 IT업체들의 숨통을 다소 틔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정부 당국의 소프트웨어(SW) 분리발주, 원격지 개발 등이 강력히 추진될 예정이어서 IT업체의 기대감은 높다.

반면, 규모면에서 공공시장에 버금가는 금융시장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경제위기로 IT예산이 급감하자 통합발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분리발주에 비해 예산이 적게 든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정책과는 딴 판이다.

금융회사의 이런 방침에 대해 무조건 손가락질을 할 수 만도 없을 것이다. 당장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점에 IT예산을 이전과 동등하게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분명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갑중의 갑인 금융회사가 통합발주를 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한 SW업체와 하도급 개발업체에게 전가된다는 것이 문제다. 인력장사를 하는 SI업체 입장에서는 최대한 제안금액을 줄여서 입찰에 참여해야 하는 만큼, 하도급업체에게 압박을 가하게 된다. 당장 돈이 급한 하도급업체는 수익성을 따지기는커녕, 프로젝트 참여에 목을 매달기 일쑤다. 금융회사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하도급업체)가 맞아 죽는 꼴이다.

정부에서도 SW 분리발주, 원격지 개발을 공공시장뿐만 아니라, 금융, 통신, 건설, 유통 등의 일반 사기업으로 확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체 IT시장에서 30% 가량을 차지하는 공공시장만 가지고는 SW 진흥책이 먹힐 리가 없다.

정부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이들 기업들의 장기적인 안목도 필요하다. 통합발주를 하면, 당장 IT예산의 절감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줄어든 투자는 IT프로젝트의 부실화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하도급업체도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업인만큼, 양질의 인력보다는 미숙련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돈 몇 푼 아껴보겠다고 시도한 통합발주로 IT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불황기의 적극적인 투자는 나중에 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는 말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 금융회사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도 명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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