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왜 저축에 열심일까
일본인들은 왜 저축에 열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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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인들의 저축 열의에 찬사를 보내도록 교육받아왔다.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근면·검소함의 중요한 모델로 일본인들의 열성적인 저축 습관이 제시되곤 했다.

그런 일본이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려진 12년간의 장기불황을 겪었다. 그러면서 거의 광적인 집착처럼 비치는 일본인들의 저축 습관이 경제학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지나친 저축 열의가 내수부진을 심화시킨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성장률 1% 시대, 제로금리 시대를 거치면서도 일본인들의 저축 열의는 별로 식지 않았다.

잃어버린 10년의 출발점에는 소비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모순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 ‘엔고’ 시대를 맞아 수출이 어려워진 일본 정부는 다각도의 내수 부양 정책을 폈다. 자국 내 시장의 수입 장벽이 높았던 일본 정부는 국민들에게 수입물품 사용에 적극 나서도록 요청했지만 실질적으로 장벽을 낮추는 조치는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다만 기준금리를 내리도록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을 압박, 5% 대였던 기준금리가 2.5%로 급락시켰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가 일본인들의 그 지독한 저축 열의 속에 담긴 양면의 날을 보지 못한 것이다.
저축하는 대신 소비를 유도하려던 정책은 결과적으로 일본의 땅값이 불과 몇 년 사이에 4배나 뛰는 버블을 유도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버블에 놀란 정부는 뒤늦게 기준금리를 올리고 부동산대출 총량제를 실시하는 고강도 긴축정책을 편다. 그러자 이번엔 주가도 땅값도 폭락하는 대대적인 버블의 붕괴가 일어난다. 그러면서 장기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부동산 버블이 한창 일어날 무렵 일본인들은 비로소 목돈이 생기기도 전에 물건을 매입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버블의 붕괴와 함께 참담한 낭패를 경험했다.

일본인들은 그 12년의 악몽을 겪으며 이제 또다시 저축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내수시장에서는 여전히 소비는 일어나질 않는다 한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더 이상 목돈 없이 물건부터 사는 일은 없다는 듯 열심히 저축에만 매달리는 일본인들. 우리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왜 그럴까.

일본으로부터 ‘나라는 부자여도 국민은 부자가 아니’라는 말들이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그런 말을 한국에서는 매우 부럽게 듣는 국수주의자들이 넘쳐났었다. 최근의 전 세계적 불황이 이미 닥치던 시점에서조차 그런 일본을 예찬하는 보수언론의 논평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기업국가’ 혹은 ‘국가기업’이라 불리는 일본형 경제시스템 속에서 국가경제단위는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 있지만 국민들은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안 쓰고 저축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미래가 불안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점에서야 어느 나라인들 다를까 싶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들은 그 나름의 안전장치가 갖춰져 있는 데 비해 일본 사회는 좀 더 취약한 게 아닌가 싶다.

각 나라마다 그 불안을 조금씩 나눠지는 사회 시스템들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시적인 사회보장 체계가 갖춰져 있든, 낡은 패러다임으로 여겨지는 가족주의의 틀이 아직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든 형태는 각기 다를지라도 어느 사회나 쉽사리 붕괴되지 않을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물론 다양한 사회보장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보다는 앞선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이 더 악착같이 저축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가족도 개인도 다 뒷전으로 미루고 회사에 모든 걸 걸고 살아가도록 구조화된 일본 사회의 패턴이다. 최근 일본의 실직자들이 직장을 잃으면 살 집도 동시에 잃게 되며 거리로 내몰린다는 뉴스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둘째는 가족주의의 틀이 한국보다 먼저 깨진 일본 사회가 그 공백을 메울 정도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일 것이다. 열심히 모으지 않으면 노후를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일본인들의 모습은 머잖은 미래의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따라나서는 것이 산업 패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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