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올 총선 최대 이슈 '민생'의 그림자
[홍승희 칼럼] 올 총선 최대 이슈 '민생'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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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대파 한단 가격이 총선 정국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황당한 광경을 요즘 보고 있다. 누군가의 과잉충성으로 인해 벌어진 대통령의 민망한 실수인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그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던 일을 용산 대통령실이나 여당인 국민의 힘이 무조건 덮고 가려 무리수를 둔 탓에 정치에서 눈 돌리고 싶었던 이들의 관심까지 끌어들이는 정치적 참사로 키워버렸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실수를 변호하자고 나선 한 후보자는 대파 가격이 '민생문제의 핵심도 아니고'라는 말을 해서 스스로 구설수를 만들기도 했다. 가뜩이나 소득은 줄고 물가는 폭등하는 상황에서 삶이 팍팍해졌다고 여기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소리를 폭탄처럼 투하한 셈이다.

국민들은 생활하기 너무 힘들다는데 정부는 여전히 별 문제없다는 입장을 유지하지만 그런 정부의 태도는 간신히 잠재웠던 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되살리는 역할밖에 안 된다. 그때도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직전까지 괜찮다고, 문제없다고 국민들의 걱정을 무마하기에 급급했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오랜 군부독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언론이 스스로 위기상황을 외면한 경우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이전 군부독재 시절에나 경험했던 언론통제까지 더해져 위기를 위기라고 말하기조차 두려워한다. 특히 방송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간섭이 도를 넘어서며 매체의 생존이 걸린 방송사들이 한껏 위축된 현실이 정부를 국민의 삶과 격리시키는 장막으로 기능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언론인들 스스로가 공부를 게을리 하며 위험한 흐름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사례도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고위공직자나 자산가 정치인들과 서민들의 삶의 영역이 아예 구분돼 있는 현실이 그 자체로 강고한 장벽이 돼 있어서 현실감 있는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는 선민(選民)들의 시선에서는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궁핍해져 가는지를 실감하기 어렵다. 얼핏 봐서는 여전히 웃고 떠드는 모습만 눈에 띌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가처분소득이 줄고 물가는 오르며 웬만한 가계는 불요불급한 지출 외에는 지갑을 닫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영세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크게 줄어 이미 폐업을 했거나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동네 상권의 위축은 그런 직접적인 거래에 그치는 게 아니고 자영업자들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들을 사라지게 만들어 그들이 소비를 줄인 분야에도 타격이 가해지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들은 당장 타격을 입지 않더라도 수출부진에 더한 내수감소로 인해 중소기업 일감이 줄어들어 당장은 아니어도 머잖아 일터를 떠날 직장인들이 대거 쏟아질 우려가 크다. 그렇게 되면 소비는 지금보다 더 급격한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

부동산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재무구조가 부실한 건설업체들 중 상당수는 부도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며 그 위기의 시기를 4월 총선이 끝난 시점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브릿지론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만 의지해 무리하게 사업을 끌어가던 건설업체들 가운데 내부유보가 먼저 바닥을 보이는 곳부터 문을 닫는 것은 이상할 일은 아니다.

중소 건설업체들 가운데는 이미 좀비상태에 들어선 곳들도 적잖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먼저 문제가 터졌던 태영건설에 내려진 유예기간이 4월 중으로 끝나면 정부가 더 이상 사정을 봐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서 정부 판단에 따른 도미노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좀비화한 기업들을 무리하게 살리려 드는 것은 일본의 실패사례에서도 경험했듯이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다만 그에 따라 하청, 재하청까지 이어지는 연쇄 고리 전체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며 너무 많은 실직자를 양산하게 될 경우에 대한 사회안전망 점검이 긴요한데 이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매우 박약해 보인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사회적 준비가 미흡했다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올해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그런 변명을 할 여지가 없다. 그때보다는 그래도 사회안전망의 바탕이라도 깔려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당장 총선 이후 벌어질 수 있는 폭풍에 대비를 서두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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