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인(人), 인간 그리고 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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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처음 등장할 때는 대개의 고대문명이 그러하듯 신과의 소통을 기원한 인류의 산물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로선 학계에서 인정된 공식 논리는 아니지만 한자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갑골문의 용처나 청동제기에 새겨진 문양들을 보면 그런 주장도 일견 타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문자 가운데 우리 문명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한자에 국한해서 살펴보다 보면 처음에는 사람을 인(人)으로만 표현했으나 사람이 신보다 사회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대가되면서 용례가 변해가며 인간(人間)이라는 쓰임이 늘어간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우리 사회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인력이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사용됨으로써 사람의 존재가치를 단지 그가 행사하고 생산해낼 수 있는 노동력만으로 평가되는, 그래서 매우 비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은 분명 노동을 통해 생존할 수 있었고 이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수렵채집 단계를 벗어나 농업사회로 진화하면서 사회적 잉여가 발생하는 시점부터 개개인의 능력 이상의 권력이 발생하고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 규정되기 시작한다.

그 이후 사회적 계급이 나타나고 점차 그 계급간의 경계가 공고화하며 육제적 노동을 전담하는 노예도 등장한다. 그러나 정치조직이 성숙하기 시작한 거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여전히 노동과 생산 공동체로서의 농촌촌락에서 큰 계급적 간극 없는 사회가 유지된다.

이때까지는 사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암묵적 혹은 통념적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인간 단계에 머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산업화 사회로 오면서 비로소 한 사람이 얼마의 생산성을 갖느냐를 가늠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인정되기보다 그 노동력의 가치로만 저울질 당하기 시작한다.

농경사회의 대지주 자리를 산업자본가와 금융자본가가 대체하던 시절에 노동력으로 저울질 당하는 사람들은 생존한계에 내몰렸고 그런 시대상 속에서 산업화에 앞섰던 유럽에서는 지식인들이 그 위험성을 경고하며 공산주의 혁명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정성이 컸던 유럽은 자본의 무한 자유에 스스로 제동을 걸면서 자본주의를 존속시킬 수 있었던데 반해 산업혁명의 물결에 미처 올라타지 못했던 러시아와 중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이지만 그만큼 자제력을 갖는 사회가 장수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제 세계는 초기 산업혁명 시대에 버금가는 큰 변화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 특히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육체노동을 노예에게 맡기고 문학과 음악과 철학을 논하던 고대 그리스 사회의 새로운 버전으로 바뀌어갈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챗봇의 등장으로 미래에 사라질 직업이 거론되고 심지어는 지금 소위 고급 인력으로 취급되는 법조인이나 의사 등의 잘 나가는 직군의 일을 챗봇이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류의 안녕을 위해 선악의 판단까지 기계에 맡기는 위험한 판단은 하지 않으리라 보지만 인간의 탐욕이 어떤 어리석은 결과를 불러올지 장담할 수도 없다.

아무튼 이런 변화에 사회시스템이 적응하지 못한 채 사람을 단지 인력으로만 취급하는 사회는 장기적으로는 도태되어 갈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어떤 사회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가늠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지금 전 세계를 시끄럽게 하는 전쟁의 기운에 자연재해의 빈발은 아마도 그 뒤를 따른 새로운 전염병이 다시 팬데믹을 불러 올 수도 있고 그 이후 인류는 전혀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하도록 강제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세계는 사람 개개인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회가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런 시대에 적응할 철학과 역사적 안목을 갖고 있을까. 단지 몇 년 앞도 생각하지 못한 채 부자감세를 통해 세수를 줄이고 그 대가로 복지예산과 R&D 예산을 축소하는 단견을 버리지 못한 채 거대한 변화가 예비된 시대의 쓰나미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삭감된 예산은 바로 미래를 담보한 우리 사회의 자산을 내다버리는 일인데 그런 정책을 결정한 누군가가 경쟁국들의 사주라도 받은 걸까 싶은 의심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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