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내년에는 매도 리포트 편하게 내게 해주세요."
[기자수첩] "내년에는 매도 리포트 편하게 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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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서영 기자] "영풍제지 매도 리포트 하나만 있었어도 피해는 훨씬 줄었을 텐데."

주가주작 의혹이 발생하기 전 이상하리만치 고공행진을 하던 영풍제지에 대한 리포트를 낸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 9월 신용평가기관이 한국IR협의회를 통해 기술보고서가 나온 게 전부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올해 초부터 영풍제지의 이상한 낌새를 알음알음 알고 있었다는 풍문이 돈다. 

업계 사람이 '다 아는 이야기'라도 애널리스트들이 '글'로 적어내는 건 녹록치 않은 일이다. 

에코프로 매도 리포트를 썼던 하나증권의 애널리스트는 일부 주주들이 출근길에 가방을 당기거나 고함과 욕설을 하는 등 심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기업도 쓴소리가 담긴 리포트를 내놓는 애널리스트를 좋아할 리 없다. 차라리 기업 탐방을 거절해 리포트가 안 나가는게 상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보니 매도 리포트는 그 자체가 기삿거리일 정도로 실종된 상태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지난 1년간 국내 33개 증권사의 리포트 중 매도 의견 비중은 평균 0.12%에 불과했다. 

과거 한 증권사는 매도 리포트 10% 의무화를 내걸었다가 결국 흐지부지 됐다.

업계에서는 사람 대신 인공지능(AI) 애널리스트가 매도 리프트를 쏟아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같은 상황 속에도 애널리스트들은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다. 

최근 유진투자증권에서는 개미들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는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매도 리포트를 내놨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KT의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두면서도 리포트에 '이걸 굳이 왜 사요?'라는 제목을 붙여 주가 방향성을 제시했다. 

금융당국은 기업 탐방을 방해하는 기업에게 벌점을 주는 정책을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애널리스트의 독립성을 확충하기 위해 리서치센터의 영업부서 지원을 금지하고, 예산을 모든 부서가 분담하도록 바꾼다고 전해진다.

매도든, 매수든, 개인 투자자든, 애널리스트든 원하는 것은 하나다. 내년 이 맘때 쯤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갈 수 있는 올바른 주식시장 공론장이 형성돼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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