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영화 한편의 힘
[홍승희 칼럼] 영화 한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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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한편이 빠르게 관객수 1천만을 향한 질주를 하며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사실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당시 한국사회의 꿈을 짓밟은 12.12 군사쿠데타가 이루어진 하루를 다루고 있다.

60~70대에게는 젊은 날 직접 겪은 경험을 담고 있기에 이제라도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음에 반가워하고 있면서 한편으로는 새삼스럽게 울컥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본다. 하지만 단지 한편의 잘 만든 영화를 찾아 극장에 갔던 일명 MZ세대로 불리우는 젊은층들은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고 거꾸로 그 영화의 토대가 된 역사를 찾아보는 열의를 갖게 만들고 있다. 덕분에 대화가 거의 사라져버렸던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에 새로운 대화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고도 한다.

영화의 기본 스토리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지만 소소한 디테일에는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혔다. 영화적 재미를 놓칠세라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바꿔서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표적인 대립항으로 내세운 전두환과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이름에서 전두환은 전두광으로 쉽게 실명을 연상시켰지만 장태완 사령관은 이태신이라는 전혀 연관성 없는 이름을 붙인 대목을 아쉬워하는 어느 아버지의 말이 유투브로 소개되기도 했다.

성공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특징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모든 출연자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시대정신까지를 반추해보게 만든 이 영화 역시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훌륭했다.

어설펐던 데뷔 당시의 연기를 기억하는 필자와 같이 나이 든 세대가 보기에 진지한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연기 잘하는 배우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배우들은 고맙기까지 하다. 물론 대다수 배우들은 이미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 이들이었지만 젊은 연기자들의 연기도 결코 뒤처지지 않고 조화를 이뤄 영화의 성공에 힘을 보태는 모습 또한 보기 좋다.

그럼에도 그런 흐뭇함만을 말하기에는 그날 영문도 모른 채 상관들의 명령에 따라, 혹은 맡은 바 임무에 따라 군사쿠데타로 인한 전투에 휘말려 사망한 병사들은 물론 살아남은 병사들도 그 때 그 상황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면 울컥하는 심정과 더불어 새삼 분노가 치솟는다. 임무를 다 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 상관의 권력욕에 휘말렸던 징집병사들에게 과연 트라우마가 없었을까. 우리 사회는 그런 고민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그 영화를 보면서 뒤늦게 자각되기도 했다.

12.12 쿠데타를 그래도 성인이 되어 봤던 70대는 이미 당시에 분노를 슬금슬금 흘리기라도 했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그 사건을 겪은 이들은 오로지 공포와 두려움으로 그 시대를 기억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이후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치고도 지속된 폭압적 정치는 그 기억을 희석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컥 화가 치밀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관객수 1천만 명을 넘어선 영화는 이전에도 여러 편 있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당시의 시대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던져줬기에 관심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산업의 질적 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생충’ 같은 영화는 아예 한국의 콘텐츠를 세계적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획기적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 세계시장을 향해 계단을 오르듯 착실히 영역을 넓혀가던 한국의 문화콘텐츠산업이 기생충 영화 한편으로 해당 영화에 대한 관심을 넘어 한국 문화콘텐츠 전반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도약의 발판을 삼았다. 그 이후 BTS나 블랙핑크 같은 아이돌 그룹의 급성장 역시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전반적 관심 증가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잘 만든 영화 한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기생충에 이어 서울의 봄이 다시 보여주고 있다. 지원하되 간여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기조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한류문화의 토대가 됐다는 점을 외국 전문가들이나 외신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그러나 이미 백범 김구선생은 갓 해방된 한국의 미래를 두고 부는 먹고 살만하면 족하고 강은 남의 침략을 받지 않을 만하면 되지만 한결같이 부러운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우리는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도 문화적 역량이 나라의 힘임을 믿었고 또 그런 믿음에 진지한 문화예술인들은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담은 작품들로 화답했다. 씨줄과 날줄이 만나 직조가 이루어지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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