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낙관하는 경제기사가 무섭다
[홍승희 칼럼] 낙관하는 경제기사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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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하순에 정부가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일제히 가계실질소득이 0.2% 늘었다고 보도했다.

작년 3분기 이후 계속 줄어들기만 하던 가계소득이 5분기 만에 증가했다는 것은 그나마 감소세에서 반전한 것이라고 즐거워하는 기사의 그 호들갑에 불길한 기시감을 느낀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에 압력을 가해오던 분위기를 실제로 겪은 필자 세대로서는 현재의 이런 기사 경향성에 경계심을 거두기 어렵다.

팬데믹 기간 중이었던 그 이전년도보다 가구평균 11만7000원이 줄어든 가계소득으로 소비자들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기사는 마약을 투입해 현재의 고통을 잊게 하려는 꽤나 사악한 의도로 읽힌다. 특히나 높은 물가상승률에 더해 높아진 이자부담률까지 감안하면 가처분소득이 얼마나 줄었을 지를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 숫자로 현실을 호도하는 보도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을 키울 뿐이다.

가구별 가처분소득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적자가구 비율이 증가하고 특히 이자비용·교육비·교통비 등 비 소비 지출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에서는 소비성향이 증가했다는 기대감 높은 기사까지 내보내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단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식료품비가 줄었다는 점이다. 먹을 것을 줄여가며 현재를 버티고 있는 가계의 증가는 사회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매우 불안한 통계인 것이다.

가뜩이나 위험하다고 국제 경제기관들이 잇달아 경고를 보내는 한국에서 여전히 건설업체들을 살리기 위해 빚내서 집을 살 분위기 띄우기에 급급한 정부로 인해 이자비용은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소득은 줄었지만 비 소비 지출이 커짐으로 인해 소비율은 높아진 병자에게 건강해지고 있다고 속이는 나쁜 의사 역할을 지금 언론이 행하고 있다.

가처분소득의 한계를 넘는 지출로 가계부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부채를 제외한 실질소득의 감소로 인해 분모가 줄어들어 늘어난 비율만 보고 절대 수치를 무시하는 이상한 계산법은 그동안 위기 때마다 경제관련 부처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상습적으로 써온 수법이다. 그러나 언론이 그런 정부를 향한 비판적 시선을 거두는 순간 언론은 짠맛을 잃은 소금에 지나지 않는다.

정책을 세우는 정부 고위관료들은 실질적 소득이 줄어들지 않아서 실감이 나지 않은 탓이라고 치자. 그러나 삶의 현장을 뛰며 현실을 보아야 할 언론이 현장 취재를 등한시하고 출입처의 보도 자료 베끼기에만 골몰한 결과는 스스로의 입지를 갉아먹는 위태로운 놀음이다.

2년 전과 비교해볼 때 분위별 소득감소율이 1분위, 즉 하위 20%는 10.0%인데 비해 5분위인 상위 20%는 1.1% 감소에 그쳤다. 4분위도 –1.2%인데 비해 3분위 –3.8%, 4분위 –5.6%로 하위 소득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소득감소폭이 급격히 커진다.

이러니 상대적으로 고소득 계층에 속하는 이들 위주의 정책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놓고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사회 전반의 현장을 파악하고 균형 잡힌 사회를 향한 충고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존재의미를 지킬 수 있다.

지금 한국의 경제상황이 전 세계적 불경기 탓이라고 유달리 남 탓하기 좋아하는 현 정부는 강변하지만 한국만큼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나라는 없다. 잃어버린 30년을 말하는 일본에서는 지금 한국경제의 혼돈상황을 보며 한국이 정점을 찍고 추락하고 있다고 조롱하기 바쁘다고 한다.

적어도 2년 전까지 한국 경제는 전 세계 평균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그때도 가계부채는 뇌관이라고 우려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가계부채 규모는 더 커졌다. 뿐만 아니라 팬데믹 기간 중에도 정부부채를 늘리면 안 된다고 정부 발목을 잡고 버티던 기획재정부는 팬데믹 상황이 다 끝난 현 정부 들어 정부부채를 대폭 늘리며 혼돈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재정투입으로 감당할 몫을 정부 부채비율 방어에만 골몰해 가계에 죄다 떠넘기고 가계부채 증가를 방관해놓고 이제는 가계부채 증가에 더해 정부부채 증가까지 일을 키워가는 기재부는 과연 누굴 위해 일하는 조직인지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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