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대통령이 가는 길
MB 대통령이 가는 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대선 시절 우리 사회에선 매우 생소한 과목인 대통령학을 국내 최초로 강의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함성득 교수가 최근 한나라당 연구모임 ‘국민통합포럼’ 창립총회에서 이명박 정부를 향해 충고하는 연설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한마디로 큰 프로젝트에 매달려 여론의 역풍을 자초할 게 아니라 작은 프로젝트를 많이 성공시키라는 스몰 윈 전략을 권했다.
듣고 말고는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선택할 일이니 앞으로 지켜보면 될 일이다. 당장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여러 시도들을 보면 기대는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령학은 대통령의 자질로 건강·정열·비전·설득력을 꼽는다고 당시 여기저기서 소개됐었다. 일반론적 얘기이겠으나 우리 현실에선 무언가 빠진 게 있어 보이는 허전한 정리다. 동북아의 역사적 경험들이 여전히 뒤엉켜 있는 속에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외교의 역사가 짧아 번번히 실수하곤 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절실한 자질 말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한국이 당면한 외교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드물었다. 치밀하게 사전 점검·조율을 거쳐 국가 간 대소사가 결정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은 종종 취임하자마자 미국에 달려가 국익을 헌상하는 꼴들을 보여주곤 했다.
한미관계는 현실적으로 한국 외교의 기본축일 뿐만 아니라 그 비중도 과반을 훌쩍 넘을 만큼 중요하다. 취임하자마자 달려가는 것까지야 누군들 쉬이 시비 걸 일이 못 된다는 얘기다. 다만 국익을 개인 주머닛돈으로 기분 내듯 함부로 내버리는 패로 써서는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에선 그런 일이 관례화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근자의 대대적인 촛불시위를 유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만 해도 그렇다. 최소한 상대가 원하는 선이 어디인지 정도는 파악하고 그 이상 내버리듯 양보하는 짓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원하는 것보다 더 크게 내주고 왔다고 해서 더욱 국내 반발을 키웠다. 내가 크게 양보하면 상대도 그렇게 대해주리라는 순진한 기대라도 했다는 것인지 참 답답했던 사안이다.
때에 따라서는 단어 하나를 놓고 국가 간에 밀고 당기기를 수십년씩이라도 벌일 수 있는 게 외교 아닌가. 그런데 외교관들이 사전에 조심스레 다듬고 조율해가며 장기간 고민해도 될까 말까 한 사안을 막 취임한 대통령이 쫓아가 그간의 수고를 확 쓸어버리고 패를 던져버리는 식으로 다 내주고 돌아와 의기양양하다.
물론 이런 사안이 비단 현 정부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니 굳이 이명박 대통령만을 놓고 왈가왈부하고자 하는 뜻은 없다. 다만 세월이 흘러도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국내 여론이 격화되니 외교라인이 바삐 뛰어 쇠고기 협상 내용을 일부 유보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상황 호도할 만큼의 변화는 끌어냈고 미 국가기관의 독도 표기 문제 역시 비슷이 진행됐다. 물론 한국 방문을 앞둔 부시 미 대통령의 선심(?)이 다소 개입된 듯 보이지만 국내 여론이 들끓지 않았다면 외교라인이 그리 분주히 뛰었고 대통령이 긴장감을 보였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외무 공무원들은 다만 영어 잘하는 테크노크라트들이다. 그간 보여 온 모습 속에서 스스로 의제를 찾아내고 국가이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뛸 의욕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이 어떤 관심을 갖느냐에 맞춰 쫓아가기 급급한 모습뿐이다.
그러니 문제는 대통령이 국가 이익에 철저할 기본 철학이 있느냐다. 명색이 국민 손으로 뽑은 대통령인데 그럴 의욕은 갖고 있으리라 믿자.
그러나 우리는 근세조선 500년에 일제 식민지까지 역사적으로 너무 오랫동안 우리 운명을 남들 손에 맡기는 데 익숙해 있었던 탓인지 국가원수인 대통령들마저 우리를 ‘보호받을 국민’으로 전락시키는 듯해 참담하다. 미래의 비전도 중요하지만 그 비전은 과거 역사의 오욕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토대 위에서 제대로 세워질 수 있지 않을까.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저작권자 ⓒ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서울파이낸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