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정위가 칼 춤을 춘다 한들
[데스크 칼럼] 공정위가 칼 춤을 춘다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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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와 경제계 구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시절, 시스템통합(SI) 기업을 처음 접했다. 컴퓨터에 대한 깊은 이해조차 없던 필자는 'SI 기업이 뭐하는 곳이지'라는 의문을 품은 채 취재를 했다. 그런데 SI 기업이 무엇을 하는 기업인지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배운 것이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의 주요 창구'라는 사실이었다. 

SI 기업은 대기업 그룹의 마치 통합 전산실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룹 내에서 전산시스템 구축 등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필요한 시스템이나 솔루션을 구축해주는 게 주요 사업 분야였다. 당연히 그룹 내부 거래가 잦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그룹 총수 일가가 SI 기업의 대주주로 있다면 내부 거래를 통해 SI 기업의 실적을 더 내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이같은 SI 기업은 한 때 총수 일가의 비밀 호주머니 창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SI 기업의 이 같은 지배구조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타깃이 됐고, 결국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총수나 그 일가는 SI 기업의 지분을 직접 소유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중간 지주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SI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지난달 31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대한상공회의소를 포함한 주요 경제단체는 공정위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행위의 고발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 개정안 행정예고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경제단체들은 '일감 몰아주기'를 한 사업자를 고발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특수관계인도 고발 대상에 포함한다는 개정 내용을 비롯해 법 위반행위가 중대·명백하지 않아도 '사회적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너무 지나친 것이며, 경제활력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감 몰아주기'는 법인의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에 있는 다른 법인이 그 법인에 일감을 몰아줘 특정 주주가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국내 회사는 동일인(총수)과 그 친족이 지분을 20% 이상 보유한 다른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당한 이익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법 적용 대상은 '지배주주', '회사 동일인(총수)'을 비롯해 그 친족과 특수관계인이 포함돼 있다. 앞서 SI기업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일감 몰아주기에는 총수 일가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 즉 총수 일가를 빼놓고 일감 몰아주기를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해 호반건설그룹를 통해 계열사 몸집을 부풀린 것을 두고 김상열 회장이 이를 은폐했다고 보고 검찰에 김 회장을 고발했다. 또 빵 유통 과정에 총수일가의 회사를 끼워넣은 SPC도 검찰로부터 2년 넘게 수사를 받고 있다. 김홍국 하림 회장 역시 아들에게 물려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다 당국에 제재를 받았다. 하림의 경우 일감몰아주기를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는 더더욱 총수 일가와 떼놓기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단체가 강조하는 '기업 활력을 제고하는 것'은 불법행위를 눈 감아주는 게 아니다. 기업이 위법행위를 하지 않고 정도 경영을 한다면 공정위가 어떤 칼춤을 춰도 떳떳하게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다. 마땅히 제재해야 할 곳에 제재하는 것을 두고 경제단체가 반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용준 산업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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