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경제, 얼마나 더 불안해야 하나
[홍승희 칼럼] 경제, 얼마나 더 불안해야 하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민스키 모멘트'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이론이 근래의 경제활동에 대한 해석으로서 유용하다는 판단이 섰다는 얘기다. 그것도 한국에 비하면 상태가 양호한 미국에서 이 용어가 등장한다는 것은 한국이 지금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류경제학이 시장경제가 스스로 균형점을 찾아 회귀한다는 낙관적 신뢰를 전제하고 있을 때 민스키는 자본주의 경제가 안정성 속에 불안정성을 잉태하면서 쉬지 않고 활동하는 화산과 같다는 비관적 전망을 발표했다. 즉, 활발한 경제활동의 결과로 버블이 발생하면서 그 버블이 터지는 시점이 도래하게 된다는 예견을 했고 그 버블이 터지기 시작하는 시점을 민스키 모멘트라고 부른다.

2000년 소위 닷컴 버블이 터졌고 2006년에는 부동산 버블이 터졌다. 이미 두 번의 민스키 모멘트를 경험했고 근래 들어 다시 이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자산시장 급락과 심각한 경기침체가 코앞에 닥쳤다는 위기감이 폭증한 것이고 그 불안감의 크기에 따라 엄청난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닷컴 버블이 터진 시점은 1990년부터 10년간 나스닥 주가가 10배 이상 오른 후였다. 신기술과 IT기업들의 서장세가 리스크 테이킹을 부추겼고 그 결과 발생한 버블이 터질 때는 나스닥 지수가 75%나 하락하며 경기 침체를 겪었다.

2009년 이후 나스닥 지수는 다시 10배 이상 뛰었고 미국 집값도 2배 이상 오르며 미국의 가계 부동산대출이 급증했다. 좀 지난 통계이기는 하나 21년 가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00년 고점의 3배, 2007년과 비교해도 2배로가 늘었다.

즉, 현대사회에서 집값과 주가의 급등은 빚에 의해 형성되고 있고 따라서 버블이 터질 때의 위험성도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런 와중에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인상 등이 겹치며 주가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 믿었던 미국채 가격의 폭락까지 더해져 가계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까지 위기를 겪고 있다.

이건 그나마 형편이 나은 미국의 얘기다. 한국은 지금 과거 외환위기 당시의 전철을 밟고 있어서 더 큰 걱정을 낳고 있다. 오히려 그 때보다 더 불안한 정책적 선택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한국은행의 외환보유 구조는 지난 3월 미국이 겪었던 은행위기와 닮은꼴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그 정도만 돼도 걱정이 덜할 만큼 외환보유 상황은 매우 위태롭다. 최근 한국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 외환보유액이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고 큰소리치지만 민간에서 보유한 외환을 빼고 보면 위태롭기 그지없다.

1997년에도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까지 정부는 걱정없다고 큰소리 쳤었다.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외화유출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의 도미노가 시작된 지 반년이 넘도록 국민들에게는 안심하라는 메시지만 계속 내보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경제 전반적으로는 수출도 호조를 보였고 전반적인 펀더멘탈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경제는 수출주도 경제임에도 불구하고 무역액이 역대 최하 순위로 밀려났다.

세계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를 대지만 208개 조사대상국 중 200위로 순위가 내려간 이유로는 상당히 궁색한 변명이다. 뭐든 남 핑계대기를 즐기는 현 정부이긴 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어도 너무 넘어 일말의 신뢰도 갖기 어렵게 한다.

이런 불신은 결국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위기를 재앙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해져가는 여러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런 큰 변화의 흐름을 외면한 채 낡은 이론에 매달리며 되지도 않는 변명만 늘어놓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결국 심각한 위기감만 키우는 일이 된다.

기존 경제학계에서는 가격상승이 일시적인 소비위축을 부르더라도 결국 생산과 소비활동은 균형점을 부근에서 안정적 상태를 보일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흐름을 보면 민스키의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화산폭발이 그러하듯 작은 버블붕괴가 반복적으로, 또 점점 짧은 주기로 거듭될수록 폭발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