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외교력이 긴요한 때
[홍승희 칼럼] 외교력이 긴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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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에서 전쟁 중이거나 전쟁 분위기가 조성되는 어수선한 시대다. 팬데믹으로 심화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부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어서 이런 상황은 쉽사리 가시기 어려워 보인다.

예로부터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전해져왔듯이 먹고살 걱정이 커지면 예의고 염치고 사라지고 개인은 개인대로 나라는 또 나라들대로 각자도생의 길로 빠지는 것을 막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세계가 그런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더욱이 절대 강자가 버티는 힘의 구조가 세워지면 큰 전쟁은 피해갈 수 있지만 그 강자가 노쇠하고 힘이 빠질 때면 그 패권에 도전하며 세계 속에서 자국의 지분을 늘리기 위한 투쟁이 격화된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확실한 1위의 자리에서 몇 십 년 버텨온 미국이 스스로 불안감을 자제하지 못하고 글로벌 밸류체인을 끊어내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찾아가기 위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는 시기에는 침잠해있던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지역별로 전쟁이 시작되지만 이런 혼돈 속에서 전쟁의 불길은 자꾸 번져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 전쟁이나 그런 혼돈을 기회 삼는 국가들이 전쟁을 추동하면 초기에는 확전을 피하기 위한 이성이 작동하더라도 순식간에 사소한 사건이 큰 전쟁으로 가는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이상한 전쟁 과정을 보면 혹시 실전경험 없는 러시아군을 3차 대전을 대비해 훈련시키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표면적으로는 전선마다 확전을 피하려는 소방수인 척 하지만 미국은 불쑥불쑥 불길을 키우는 발언과 행동들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세계 전략의 패를 너무 일찍 꺼내든 중국을 초장부터 심하게 압박하고 두들겨 팬 미국의 전략은 성공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물자가 부족해지면 전쟁을 벌여도 판을 크게 키우기는 어려울 테니까.

미국의 불안 초조함이 얼마나 심한가는 중국, 러시아와 긴장 속에 탐색전을 벌이면서도 명색이 우방이라 하고 또 아직 충분히 위협적이지도 않은 한국에 대해서조차 시시때때로 견제구를 던진다. 이런 견제구가 미국에 충성맹세를 하고 납작 엎드린다고 해서 사라질 것도 아니다.

이성계의 조선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주체적 외교의 경험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한 한국은 이제까지 국제사회에서 줄서기나 잘 하면 된다는 식으로 안이한 외교를 해왔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정부들이 들어설 때마다 주체적 외교를 시도했지만 정권이 바뀌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아 아직 한국의 외교력은 미약하다.

외교적 역량은 세계사의 판을 제대로 읽고 스스로의 입지를 명확히 인식할 때 발휘되는 것이다. 또 외교역량이 정부에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이지만 판을 읽고 대처하는 것은 기업을 위시한 민간부문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요즘 글로벌 경영에 나선 대기업들은 정부보다 나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고 그만큼의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정부부문에서 또 의회 쪽에서도 사안별로 눈치껏 처신하는 것은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무수한 상대국들의 내부 역학구도며 잠재된 국가 역량 등에 대한 충분한 분석을 통한 전략적 행동을 기대하기에는 미흡하다.

요즘 방위산업이 잘 나간다고 떠들썩하다. 그런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이 소위 말하는 밀리터리 덕후들의 유투브 방송이라는 점이 다소 불안해 보이지만 레거시미디어들이 관심을 두기 전부터 흐름을 잡아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전략물자로 분류되어 미·중 갈등 속에서 여러 제약과 견제를 당하는 반도체와 비교해 매우 직접적인 전쟁물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방산수출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아직 크지 않다. 기술이전조차 꺼리던 한국의 방산에 대해 아직은 미국이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국방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확실한 통제 하에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대문일 터다.

그러나 미국에 무기 공급을 거부당한 국가들이 차선책으로 한국을 선택하는 품목들이 늘어갈수록 어느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의 목을 물고 압박할 위험성에 늘 대비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 무기가 수출된 국가의 향후 행보에 대해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적대적으로 돌아서지 않게 관리하는 외교적 긴장상태를 풀어서도 곤란하다.

물론 방산수출을 아무 나라에나 섣불리 하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 국제사회의 왕따로 전락하는 것도 순식간이라는 점을 늘 명심하고 경계할 일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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