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념?
[홍승희 칼럼]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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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대통령의 입에서 느닷없이 이념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며 어수선하다.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돼 있던 독립운동가 그 중에서도 무장투쟁을 했던 영웅들의 흉상 철거문제도 그런 대통령의 발언과 연관되며 더욱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왜 하필 이 시점에 그런 이슈들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시각도 많다. 경술국치주간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고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정부는 그런 일본 입장을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또한 그 기간에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던 독립운동가들의 흉상 철거문제를 터트렸다.

경술국치주간이라는 시기 문제를 보면 아무리 봐도 한국의 역사를 모욕하는 행위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전 세계 강대국들이 저마다의 국익만을 바라보고 각자도생의 달리기를 시작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이념’을 기치로 들고 나서는 것은 매우 이질적이다.

비판 이슈를 덮기 위해 더 큰 이슈를 터트리는 국내 정치용으로만 사용했다 해도 역사적 퇴행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외관계에서도 같은 잣대를 들고 나섬으로써 한국의 미래를 매우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충돌하고 있는 국가들이나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는 국가들이나 그 바탕은 이념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변화를 두고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내용을 보면 과거 냉전시대처럼 명확하게 진영 사이의 선이 그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이 주도하는 편짜기에 겉으로는 많은 나라들이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 내면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호주, 영국, 캐나다 정도다. 반대진영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공격을 받고 있는 나라들이 모일 수밖에 없고 현 단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러시아가 결속하고 있어서 미국을 힘겹게 하고 있다.

미국이 적을 뭉치게 만드는 실책을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진영싸움에 많은 나라들은 적극적인 편 가르기에 동참하지는 않는다. 유럽에서부터 다극체제라는 표현이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또다른 보스국가가 등장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미국에 우호적인 입장이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따라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어내기보다 이슈 별로 현실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쿼드에 참여하는 인도는 평소 국경분쟁을 벌이는 중국과도 손잡고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나 식량의 대 중국 수출 비중이 큰 브라질이 중국과의 거래통화로 위안화를 사용하기로 한 것, 석유 최대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레이트가 최대 소비국인 중국과 인도와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는 것 등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 정도의 강도는 아니라 해도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조차 중국시장을 포기하려는 국가는 없다.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도 모두 중국과의 거래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내놓는 메시지는 가능한 한 적대적 표현을 삼간다.

미국에 가장 밀착하기 위해 애쓰는 일본조차 중국이나 러시아에 비판적 메시지를 내더라도 극단적 표현은 피하고 동시에 대화채널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미 냉전시대의 이념은 사라지고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서로 을러대기는 하지만 먼저 한발 앞으로 나서서 싸움을 하려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싸움을 건 미국조차도 중국과의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이 실제로 벌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미국 자본의 활동영역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표현을 바꿀 때 이미 그런 미국의 의중은 명확히 밝혀졌다.

이런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서 유독 한국은 '이념'을 앞세우며 표적이 되기를 자처하고 나섰다.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뒤로 손을 잡는 미국이라는 보스 앞에서 혼자 주먹 쥐고 앞장서겠다고 설치면 혼자 상처입고 끝난다.

미국이 한국에 원하는 것이 그런 행동대장 역할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한국의 대통령은 한국의 미래와 안전을 위해 좌고우면하면서 걸음을 내디뎌야 하고 만남을 가질 때는 받아야 할 대가를 명확히 받아낼 줄 아는 외교력, 정치력이 필수인데 요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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