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초
[홍승희 칼럼]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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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환경문제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제법 높아진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 행동은 미미하다. 개개인들의 노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이기적인 선택이 환경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흔히 환경문제 특히 에너지 문제를 거론하지만 인류사회 전반의 문제를 떠나 개별 산업에서는 그보다 적절한 고용과 노동환경의 개선이야말로 더 근본적인 조건이 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요즘 일본의 반도체 몰락이 거론되기도 한다.

일본의 관련 전문가들은 일본경제의 버블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지속적인 투자 대신 감원을 선택했고 그 결과 회사를 나온 인력들이 당시 반도체사업을 처음 시작한 한국에 참여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쓰는 데 일조했고 그 삼성의 부상에 반비례해 일본 반도체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그 무렵 미국에서도 반도체 인력의 대량 해고가 발생했지만 미국의 퇴사 인력들은 스스로 연구 랩을 만들며 설계분야의 발전을 이끌어갔기 때문에 비록 제조 분야는 인건비가 쌌던 외국기업과 협업했지만 미국 반도체산업의 실질적 영향력은 유지됐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산업생태계가 가진 차이 때문이지만 한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비교사례라 할 수 있다. 개인의 도전적 창업을 가능케 한 미국과 개인보다는 조직 속의 1인으로 인력을 바라보는 일본의 사회문화적 환경의 차이 가운데 한국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늘 점검하고 반추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반도체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사석에서 나온 대화 가운데 하나가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보충하지 않고 그야말로 남은 노동자들을 갈아 넣는 식의 노동착취를 일삼는 대표적 직업군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대형병원의 간호인력,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의 보육교사들과 더불어 조선소의 현장노동인력을 문제적 노동현장의 대표사례로 꼽았다. 병원이나 유치원 등은 우리사회에서 대표적으로 로비력이 있는 조직으로 유명하고 따라서 운영주체들의 이익에 지나치게 유리한 법적 예외조항들과 그를 악용함으로써 초래되는 만성적 노동착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병원이나 보육시설과 조선소의 경우는 성격상 차이가 있다. 일단 간호인력이나 보육교사 등은 인력수급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퇴직자의 자리를 의도적으로 채우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떠넘기는 경우라면 조선소의 경우는 다른 사업장에 비해 같은 노동을 해도 임금 등 처우가 열악한 경우라고 한다.

지난 팬데믹 기간 중 조선소들이 휴업일수가 늘어나며 직장을 벗어났던 노동자들이 새로 조업할 시점에 복귀하지 않아 인력부족이 발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젊은 숙련노동자들이 조선소 밖에 나가면 훨씬 유리한 조건의 취업이 가능한 것을 경험하고 되돌아가지 않아서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이 비슷한 일이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앞서서 일어났었다. 조선업 불황기에 인력양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있던 자리마저 감원으로 현장에서 밀어낸 결과 막상 조선업 활황기가 와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 외국에서 인력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외국인 노동에 배타적인 일본사회의 분위기 탓에 숙련 노동자 부족을 겪으며 결국은 조선업의 쇠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현재 충분한 인력이 수급되는 분야임에도 채용을 미루며 과중한 노동을 강요하는 업종의 경우 앞으로 신규인력 공급이 끊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의료인력이나 보육인력은 경제사회적 발전에 따라 인력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지금처럼 채용에 미온적인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해당 직종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사람을 아끼는 직장과 노동자를 단지 부품 정도로 취급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충성도는 차이가 뚜렷해지고 창의적 노동도 불가능해진다. 결국 회사와 산업 전반의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일본 신드롬을 피하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노동 유연성만 부러워할 게 아니라 평균 성공률 10% 미만인 벤처기업들이 쉽게 창업하고 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서 재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미국의 사회적 여건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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