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폭탄돌리기는 시작됐다
[홍승희 칼럼] 폭탄돌리기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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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돌리기라는 게임이 있다. 일종의 시한폭탄을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돌리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리는 것으로 서로 자기 차례에 터지지 않도록 긴장하는 모습으로 재미를 주는 게임이다.

대개의 게임이 그렇듯 그 구조는 인간사회의 기본 속성을 반영한다. 터져야만 하는 폭탄이 내 손 안에서만 안 터지면 그만이고 따라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차례에 터지길 기대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체시키거나 혹은 재빨리 타인에게 넘기는 모습이 특히 각자도생의 시대적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국내적으로도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글로벌 밸류체인이 부분적 붕괴를 맞고 있는 작금의 국제사회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시절 미국이 처음 중국을 향해 투척했던 폭탄은 두 나라 사이의 주고받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자기 진영을 구축해가며 편 가르기를 하려다 보니 그 틈새에 빠지지 않으려는 많은 나라들로 인해 이제는 다수가 참여해 이리저리 폭탄 돌리기를 하는 단계로 변해가고 있다.

처음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게 만든 나라는 미국이었고 그로써 소련 견제를 넘어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를 끌어내는데 성공한 미국은 꽤 오랜 시간 중국과의 밀월을 즐겼다. 미국 소비자들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개혁개방에 매진하던 중국의 값싼 공산품들로 유례없는 풍요를 누렸고 덕분에 물가는 안정을 얻었다.

그러나 중국은 단순한 생산기지에 만족할 나라가 아니었다. 처음 중국이 개방에 나설 당시만 해도 세계 최대 인구대국 중국의 잠재적 시장가치에 열광하며 몰려들던 세계의 기업, 자본들이 시간이 지나며 중국 정부에 길들여질 단계로 접어들고 점차 고도산업화 단계로 진입한 중국의 성장은 가장 먼저 미국을 두렵게 했다.

미국이 금융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면 중국은 엄청난 인구 자체가 무기인 나라다. 개방 초기에는 그 인구가 족쇄인 듯싶었던 중국이지만 구매력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그 인구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나 현대사회에서나 많은 인구는 내부적으로는 그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통치의 부담이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국력을 과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경제적 궁핍에도 불구하고 과거 냉전시대에도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인구대국들이 미`소 양 진영 밖에서 독자적 행보를 할 여지를 확보했다.

지금 국제통화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흔드는 유로화와 위안화의 부상도 그런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이미 무역결제에서 유로화와 위안화의 비중은 달러화의 독주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달러화 다음 비중을 갖는 유로화는 거의 유럽 내 거래에 국한된 반면 위안화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러시아 등 광역 거래망을 갖춰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중국과의 직접 거래에 제한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거래규모가 늘어날 경우 그 위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국제결제통화로서 달러화를 대체할 가능성은 낮지만 적어도 달러화의 독점적 위상에 타격을 가할 가능성까지 부정될 수는 없다. 유럽이 중국과 소통하는 국제결제통화의 다극화는 이미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가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데다 금융을 무기로서 너무 자주 휘두른 미국의 실책 탓이다. 이는 마치 잦은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폭력에 둔감해지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폭력에 맞서기 위한 반격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전 세계를 하나로 묶여있던 시장이 무너진 데다 코로나 팬데믹의 후유증까지 겹치며 모두 함께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나눠 갖게 됐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미국이 시작한 금리인상은 점차 세계 경제의 폭탄으로 진화하며 서로 그 폭탄을 타국에 전가하기 위한 싸움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환율은 널뛰기를 하고 그야말로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각국의 신경전이 치열할수록 결국 국내 기반이 약한 나라들부터 금융시스템이 위협받기 시작한다. 폭탄을 처음 투척한 미국이 먼저 금융시스템에 타격을 받았지만 과거 경험을 토대로 일단 가볍게 넘어갔다. 그러나 세계 경제에 다가오는 지진은 아직 본진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국내 시장기반이 약한 국가들이 마지막에 그 폭탄을 떠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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