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반도체 기업은 자동차 기업을 벤치마킹 하라
[전문가 기고] 반도체 기업은 자동차 기업을 벤치마킹 하라
  • 박정규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겸임 교수
  • jeonggyu@hanyang.ac.kr
  • 승인 2023.04.20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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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반도체 산업은 중대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 미중 대립속에서 미국은 수평 분업화된 글로벌 반도체 산업으로부터 중국을 끊어내고자 한다. 제조 측면에서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대변되는 공정 미세화가 어느 정도 한계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공정 미세화를 좀더 진척시키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공정 미세화 이외의 패키징과 같은 부문에서 혁신을 모색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런 2가지 혁신 방향을 '모어 무어'(More Moore)와 '모어 댄 무어'(More than Moore)라고 표현한다. 또 반도체라는 제품의 종류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반도체를 오랜 기간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또는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라는 프레임으로 분류해왔다. 한국 기업이 잘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있고, 그 이외의 것은 한 묶음으로 처리했다. 이 방식은 간단하기에 일반인이 알아듣기 쉽다. 하지만 앞으로 반도체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고 발전시키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자동차에 필요한 반도체의 경우 더욱 그렇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사람에 비유해 설명해보자. 사람은 머리로 기억하고 계산도 한다. 이 때 필요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CPU(중앙처리장치)다. 한편 사람은 오감(五感)을 가진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다. 이와 비슷하게 자동차는 여러 가지 센서가 필요하다. 특히 자율주행이 진행되면서 자동차에는 점점 많은 센서가 장착되고 있다. 사람의 눈에 해당하는 이미지 센서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반도체가 아날로그 반도체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4차 산업은 많은 기기에 센서를 장착해 그 곳에서 얻은 신호를 잘 처리, 유용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센서의 발전은 아날로그 반도체의 필요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자동차에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이다.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근육과 같다. 전기차는 배터리 전원으로 모터를 움직인다. 이 때 필요한 반도체가 파워(전력) 반도체이다. 이외에 자동차는 다양한 반도체를 사용한다. 따라서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기존 반도체를 분류하는 방식, 즉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란 분류 체제로는 반도체 산업의 전체 모습을 조망하기 힘들 정도로 반도체의 종류가 많아졌다.

자동차 산업은 이미 제품 다양화를 경험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과거 차량 동력원은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으로 대별됐다. 하지만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자동차 동력원은 하이브리드 차(HEV), 수소차(FCV), 전기차 등으로 다양해졌다. 또 국가별로 차량 법규가 다르기에 자동차의 종류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많다.   

지난 20년간 자동차 산업은 이와 같이 차량 종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발생한 각종 문제점에 대한 대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계는 다양해진 차량을 보다 체계화해 설계하기 위한 모듈 설계 기법을 도입했다. 폭스바겐(VW)은 모듈러 툴킷 방식이라는 방식을, 도요타는 도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쳐(TNGA)라는 설계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또 자동차 생산 거점이 세계 각지로 늘어나면서 해외 공장을 관리하는 능력을 집중적으로 향상시킬 필요성이 제기됐다. 현대차는 한때 기획조정실 내 해외공장 지원실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세계 각지로 증가하는 공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도요타는 각 지역별로 완결된 형태의 부품 공급망을 만들어나갔다. 이 모든 노력은 자동차 산업에서 복잡성을 대응하기 위한 방법이다.

반도체도 자동차처럼 점점 제품이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그래서 CPU, GPU, 인공지능 반도체, 어떤 특정 기능을 위해 다양한 반도체를 조합해 사용하는 시스템 반도체 등 반도체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종류가 많아질수록 다품종 소량 생산 형태로 점진적 변화가 요구됐다. 게다가 반도체 공장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 현지 생산이 진행되면서 세계 공장을 경영할 수 있는 역량 또한 필요하게 됐다.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철강 업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냉연강판, 열연강판, 핫스탬핑, 고로, 전기로, 전자강판 등 한 기업이 다뤄야 할 제품과 공정이 다양해지고 있다. 또 철강 회사가 차량용 배터리 재료를 개발하는 사업으로까지 사업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과거 한국 기업은 특화된 하나의 제품에 성공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이젠 복잡다단한 다양한 제품 사양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게 됐다. 이것은 결국 우리나라 기업이 이전보다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은 이런 복잡다단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과거 개발 시대 조직과 다른 새로운 조직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은 이미 제품 다양화, 세계 공장 운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 산업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다양한 제품 복잡성 문제를 해결했는지, 해외에 산재한 공장을 운영하면서 부품 공급망을 어떻게 최적화했는지, 인력을 어떻게 육성했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반도체와 자동차라는 제품의 차이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제조업을 관통하는 사상은 비슷하다. 지금 맞닥뜨린 문제, 즉 제품의 복잡성, 글로벌 공장 운영,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측면은 오히려 유사한 점이 더 많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외 반도체 기업에서 배울 것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이종 산업(자동차)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반도체 기업이 자동차 산업을 벤치마킹을 하다보면, 자동차산업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을 수도 있다. 현재 자동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의 에코시스템(부품 공급망, 생태계)은 서로 겹쳐졌다. 업종을 넘어서는 벤치마킹, 업종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창출이야말로 정체된 기업에 새로운 생동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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