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생애주기에 맞춘 장기투자용 펀드 시장규모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 우려 등으로 노후 대비에 관심이 커진데다 퇴직 연금 자금들이 이 시장으로 본격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가입자의 목표 은퇴 시기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비중을 조정해주는 자산배분 펀드인 타깃데이트펀드(TDF)의 설정액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공모형 타깃데이트펀드(TDF) 설정액은 지난 7일 기준 약 8조3300억원으로 집계됐다. 펀드 설정액은 투자자가 펀드에 넣는 원금을 뜻한다.
TDF 설정액은 올해 1월 초 7조1700억원 수준이었지만 이후 불과 9개월만에 1조1000억원이 넘는 돈이 TDF로 유입됐다.
특히 코스피가 약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TDF로의 자금 유입이 꾸준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해 7월 기준 5조4600억원이던 TDF 설정액 규모는 매달마다 늘어났다. 올해 5월 처음 8조원을 돌파한 뒤 현수준까지 성장했다.
노후대비용 펀드인 만큼 중단기 증시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설정액이 꾸준이 증가하는 모습이다. 은퇴 시점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자동으로 자산 간 비중을 재배분(리밸런싱)해 주는데, 보통 20∼30대에는 위험자산 비중이 높다가 은퇴 시점에 근접할수록 안정자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보통 상품명 뒤에 '2040', '2055' 같은 숫자가 붙어 있어, 자신의 은퇴 예상 연도에 맞춰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상장지수펀드(ETF)로만 구성된 타겟데이트펀드(TDF)인 'ETF TDF'를 출시하는 등 업계는 상품 차별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 KB자산운용은 지난달 22일 △KBSTAR TDF2030액티브 △KBSTAR TDF2040액티브 △KBSTAR TDF2050액티브 등 ETF 3종을 상장했다. 한화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도 각각 3~4개 상품을 이미 출시했다.
기존 TDF에 ETF의 장점을 녹인 상품인 TDF ETF를 통해 업계는 시장 점유율을 바짝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ETF TDF는 펀드가 아닌 ETF 방식으로 TDF를 운용하기 때문에 보수가 저렴하고 매매 편의성이 높으며 보유종목을 하루 단위로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환매 기간이 짧아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 중 하나다.
이에 더해 이달 정부의 디폴트옵션(사전지정 운용제도) 상품 승인으로 퇴직연금 자금이 추가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업계의 경쟁도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가입자의 운용 지시가 없으면 회사와 근로자가 미리 정한 방식, 즉 기본설정값(디폴트)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TDF가 디폴트옵션으로 많이 활용돼 왔다.
고강도 긴축 여파로 인터넷과 게임 ETF의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반면 강달러 기조에 단기채권형·달러 관련 ETF의 수익률은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ETF TDF 위주로 시장이 급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하재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TDF 수요가 많이 증가할 것"이라며 "디폴트옵션 도입을 계기로 중소형·독립계 자산운용사들까지 잇달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중소형사인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과 트러스톤자산운용도 TDF를 출시해 경쟁에 뛰어들었다.
중소형사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면서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KB자산운용 등 대형사 간의 보수 인하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장기투자 특성상 작은 보수 차이로도 누적 수익률 격차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자산운용은 'KB온국민TDF'의 보수를 지난 1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인하했고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한화자산운용은 지난달 자사 TDF 상품의 보수를 10∼15%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