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대통령을 향한 苦言
CEO대통령을 향한 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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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요인 중 가장 대중들에게 어필한 것은 CEO라는 이미지다. 경제가 난국이라고 질타 당하는 시기에 등장한 차기 리더십이 CEO의 이미지라면 대중들의 관심을 모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렇게 기업국가의 CEO로 임명되다시피 한 대통령이 집권 초반부터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집권하자마자 갑작스레 더 악화되고 있는 경기는 유가 급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책임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경제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스스로 선택, 사용한 만큼 대중적 실망감 또한 마땅히 감수해야 할 대가다.
당장의 경기가 좋으니 마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5년을 정말 잘 견뎌낼 만한 역량이 되느냐 마느냐를 보여줘 다수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권이 집권 2개월 만에 사이버공간에서일망정 탄핵서명의 거센 불길이 번지게 하는 데는 마땅히 그럴 만한 안팎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집권 초반 두 달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지켜본 뒤 정부 비판을 한다는 언론의 잠정적 관행마저 무시하며 취임 보름도 안 된 대통령의 말투부터를 문제 삼아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던 참여정부도 이미 겪은 한국인들이다. 당시의 전례에 비하면 언론의 과보호를 받고 있는 현 정부로서 대중들의 비판에 불평을 터트려서는 안 된다. 누가 탄핵 서명을 주동하느냐고 검찰을 앞세워 뒤지고 다니고 포털사이트들에게 기사를 감추라느니 간섭하는 일은 월권이다. 화가 난 대중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 뿐이다.
주주와 소비자가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는 기업과 달리 국가는 그 구성원인 국민이 기업으로 치면 주주이면서 동시에 정책의 생산자이며 소비자이자 수혜자이기도 하다. 국민주권을 명시한 헌법조항을 단지 명목상의 규정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한 국가가 흥하든 망하든 대부분의 국민은 그 국가와 함께 흥하고 망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주인이다. 그래서 경영을 위임했던 리더가 국가 내부를 분탕질 쳐놔도 결국 그 뒷수습은 국민들 몫이다. IMF 위기 때에는 나라가 망할까봐 애들 돌 반지까지 내놓으며 금모으기에 대다수 국민들이 참여한 것이야말로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사태를 수습하러 나서는 진정한 주인의 모습이었다. CEO대통령도 좋지만 결국은 그 주인에 의해 위임된 한시적, 제한적 리더십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기왕 CEO의 이미지 위에 얹혀 집권했으면 진정 CEO답게 경영할 일이다. 어쭙잖게 ‘이념’을, ‘종교’를 내세워 고집피울 권리가 그에게는 없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범죄다. 미래를 저당 잡힐 권한은 더더욱 없다.
지금 중·고등학생들이 집단으로 촛불시위에 나서는 것을 두고 전교조 탓이나 하는 멍청한 짓은 마땅히 삼갈 일이다. 아이들은 지금 7년 혹은 10년 후에 나타날지도 모를 광우병의 위험이 학교나 군대 급식으로 강제돼 자신들의 미래가 짓밟히는 데 분노하고 있다. 저들 미래로부터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면서 감히 CEO라는 이미지에 기대지 말 일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로 인한 광우병 우려가 증폭되면서 전국이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에 대한 인식 따위는 애초에 갖고 있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발언을 했다. 협상이 타결되고 나면 한우사육농가 지원 대책 정도가 논란이 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앞서 정권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힘겨운 협상을 벌였는지 전혀 알고자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무신경함에 할 말을 잊게 된다.
기업 CEO는 개별 사안에 관한 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추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랫사람의 실수나 죄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걸머져야 한다는 것을 지난 5년간 충분히 보지 않았는가. 5년간 보장된 자리라고 하나 그 자리는 긴장 풀고 멋대로 해도 좋은 자리가 아니다. 국민을 설득할 수 없는 일을 함부로 벌여서도 안 된다. 그 어느 자리보다도 스스로를 경계할 줄 알고 국민을 섬길 줄 아는 겸손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엄혹한 자리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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