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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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와 더불어 한동안 잠잠하던 관료들의 옛 버릇이 부활하고 있다. ‘국민연금’으로 신용불량자 구제에 나서기로 해 이르면 7월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가 지난달 말 내놓은 소외계층 지원책의 하나이지만 보건복지부가 상정하고 신용회복대책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표결로 결정했으니 일단 형식상 시비 걸만한 하자는 없다. 복지부장관이 위원장이고 위원회에 참석한 정부 당연직 위원, 사용자단체 대표, 전문가 그룹의 동의로 노동자 단체 빼고도 무난히 통과된 모양새가 개운치 않을 뿐.
MB정부의 대선 공약사항이었던 신용불량자 구제대책이 새 정권 출범 두 달도 채 안 돼 보건복지부에서 나왔다는 점은 또 모처럼 기민함을 보인 보건복지부에 새로운 시선을 주게 만든다.
정권 차원에서 보자면 참여정부의 어설픔에 비해 확실히 세련된 일처리 방식을 보여준다. 장기적 전망 따위는 무시하고 가볍게 포인트를 따는 데만 집중,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퇴임 후 세상이 망가진들 책임 뒤집어쓰는 것은 뒷사람 몫이니 집권세력들로서야 무에 걱정이겠는가. 그러나 정권 바뀌자마자 인기성 정책 실현을 위해 연기금부터 흔들고 나섰으니 국민 된 입장에서는 앞으로 사회복지 인프라의 불안정성이 얼마나 커질지 몹시 걱정스럽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연기금은 정권의 주머닛돈이나 매한가지였다. 정책이 벽에 부딪치면 맨 처음 들고 나오는 무기가 연기금이었다. 폭락하는 증권시장은 늘 주머닛돈 꺼내 쓰듯 사용하는 정부의 지지로 급반전하기가 다반사였다.
지금 각종 연기금의 불안정한 구조는 그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10년만의 정권 탈환이라고 희희낙락하는 집권세력이 처음 보여준 것이 10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니 앞으로 올 시절이 어찌 염려스럽지 않을까.
새 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표결로 통과시킨 신용회복대책은 신용불량자가 그간 납입해온 국민연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금융기관에 진 빚을 갚도록 하는 것.
얼핏 봐서는 제안부처나 신용불량자를 끌어안고 앓던 금융기관, 신용불량자 당사자까지 두루 덕을 봄직한 대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과장광고의 진면목을 본 것처럼 씁쓸하다.
복지부는 신용불량자 260만 명 중 은행 빚이 적고 그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해 채무조정액 전액상환이 가능한 29만 명 정도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라고는 하나 내용상 악성채무자로 보기 어려운 이들이 대상인 듯하다. 대체로 보자면 보증 잘못 섰다가 졸지에 신용불량자로 몰린 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패자부활전이라는 정부의 선전이 조금은 민망하다.
다소는 억울하게 신용불량자의 오명을 덮어 쓴 그런 29만 명이 어떻든 빚의 질곡에서 벗어나고 오명을 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바람직하다. 금융기관들로서도 부담을 덜게 되니 반길 일이긴 하다.
다만 은행 빚보다 값싼 3.4%의 이자율로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토록 한다는 데 정상적인 국민연금 운용 수익이 그만 밖에 안할 리는 없다. 다른 모든 연금가입자의 손실이 발생한다. 정부의 예상 손실액은 417억 원. 이 이차보전 재원은 정부예산, 부실채권관리기금 중 국책기관 할당분을 통해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굳이 그럴 바에야 은행에서 국민연금으로 대출 바꿔타기나 다름없는 이런 방법을 쓸 이유가 있나 모르겠다. 그 지원액을 차라리 지금 그대로 금융기관을 통해 지원하는 것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하기는 이 대출이 노후생활안정 자금의 최소 보루인 연금에서 당겨쓰는 셈이라는 점이다. 결국 국민연금 납부 자체를 어려워하는 계층도 많은 터에 채권 상환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고 최악의 경우 연금수급권 상실로 인한 노후 빈곤 확산의 위험이 커진다.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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