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주의와 시장
시장주의와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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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시장 상황을 보면 장세에 간섭하려는 손길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조짐이 간간이 나타난다. 사안에 따라서는 벌써 정부의 시장 개입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시장주의자들의 정부가 정권 초반부터 보여줄 만한 행보는 아닌 듯싶기에 역으로 그렇게나 시장 상황이 나쁜가 싶은 걱정을 하게도 된다.
물론 정부는 어떤 경우에라도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적절한 방어막을 치고 대비해야 한다. 그러라고 정부가,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집권자의 ‘주의’가 무엇이든 국가 공동체의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을 예방하는 것은 기본 의무일 터이다.
다만 정부의 시장 개입은 지나치게 조급해도 위험하고 너무 느긋해도 위험하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괜스레 앞질러 방어무기들을 소진해 버리고 나서도 상황이 호전되지 못하면 그 땐 싸울 방도가 사라질 게 아닌가.
글로벌시대다. 전 세계 시장의 흐름과 역행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은 없다. 일례로 미국 달러 가치가 폭락하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강세를 유지하게 하려면 코앞의 수출호조를 얻는 대가로 얼마의 전체시장 부담을 키울 것인지부터 고려해 봐야 한다.
지금 미국 달러의 가치 하락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추세다. 미국 경제의 위기에 대한 여러 진단들이 줄을 잇고 있다. 버냉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마침내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로 촉발된 미국의 경제위기가 급속히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고 다소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IMF는 미국의 주택시장 침체와 그로 인한 신용경색이 세계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올 세계경제성장률을 3.7%로 0.4%p 하향조정했다. IMF의 진단으로는 미국의 경제성장이 사실상 멈췄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요란한 위기설들이 다만 예방적 경고에 그칠 수도 있다. 폭등하던 석유 값도 이제는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제침체가 당장 자국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을 우려하게 될 중국이 어떤 역할을 감당하게 될지도 시장을 전망하는 데 또 하나의 변수로 삼을 만하다.
미국 말고는 세계 최고의 달러 보유국이 된 중국이다. 그것도 다른 모든 국가의 보유고 전부를 능가할 만큼 큰 규모다. 산업구조는 아직 낮은 단계에서 빠르게 수준을 높여가고 있는 상태이지만 경제규모로는 그 어느 나라라도 결코 가볍게 보기 어려운 나라다. 그 중국으로서는 경공업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가 중공업, 나아가 정보통신산업 수출국으로 탈바꿈할 때까지는 미국 경제의 붕괴를 좌시만 할 수 없을 게다.
이런 모든 변수들은 한국 정부 관료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고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종 정치적 필요나 성과주의적 욕망 등이 판단 시점을 놓치게도 하고 성급한 시장개입을 하도록 압박하기도 한다. 염려스러운 것이 바로 그 대목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현 정부이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구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더 멀리 후퇴하는 모습뿐이다. ‘실용’이 과연 누구를 위한 실용인지 의구심이 든다.
친미 노선을 강화하려는 것은 현 정부의 성격상 그러하리라 예상하는 바이지만 혹여 곰팡내 나는 은혜를 읊조리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진정한 실용주의자가 되려면 좀 더 두 다리에 힘을 줘야 할 것 같다. 자기 두 다리로 든든히 버티고 설 의지도 없이 실용은 무슨 실용이 있단 말인가.
미국의 현실적 힘이 제아무리 강해도 이미 지는 해다. 거대한 화산 폭발은 때로 단 며칠의 미미한 조짐만 보이다가 한순간 크게 분출하며 삽시간에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작은 조짐을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실용을 사랑하는 시장주의자들이라면 지금 붕괴 조짐이 갈수록 뚜렷해져만 가는 거대 시장국가 미국을 냉정하게 읽는 법부터 새롭게 공부해야 할 성싶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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