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독점 등엔 영업행위 규제
빅테크 업계 "규제 초점 아쉬워"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금융 당국이 금융회사와 빅테크 간 존재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잡기에 본격 돌입했다. '동일 기능·동일 규제' 원칙을 고수하되, 규제 차이와 관련해 한쪽을 제한하지 않는 수준에서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데이터 독점이나 편향적 서비스 제공 등 빅테크의 막강한 영향력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선 영업행위 규제를 통해 철저히 감독하기로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5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열린 '금융플랫폼 혁신 활성화 간담회'에서 "종합 플랫폼화 과정에서 동일 기능·동일 규제 적용 문제, 데이터 독점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면서 "플랫폼을 통한 금융서비스 제공도 금융안정과 소비자보호, 공정경쟁 기반 위에서 추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동일 기능·동일 규제와 소비자보호 원칙이 지켜지는 가운데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동일 기능·동일 규제'와 공정경쟁은 고 위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온 원칙이다. 기존 입장을 이날 간담회를 통해 재확인한 셈이다.
금융 당국은 빅테크의 덩치가 커지면서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다른 이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네트워크 효과'나 기존의 것을 계속 이용하는 '락인 효과'가 확산되고 있다고 봤다. 빅테크들이 가진 방대한 데이터로 인한 독점력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 위원장은 "대형 플랫폼에서 나타날 수 있는 데이터 독점, 편향적 서비스 제공 등에 대해서는 영업행위 규제 등을 통해 철저히 감독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는 금융플랫폼의 '손해전가', '경제상 이익 제공 강요', '경영활동 관여' 등 우월적 지위의 남용 금지 규정이 반영돼 있는데, 이를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은 어느 한 쪽을 제한하는 것보단 공정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고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정경쟁 등을 언급하면 규제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서로 같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찾자는 의미"라면서 "금융사들도 핀테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는 만큼, 함께 발전하는 큰 방향을 잡겠다"고 설명했다.
빅테크의 금융상품 중개 수수료 규제 가능성과 관련해선 "금융소비자보호법도 적용이 되고 공정위 등에서도 살펴보고 있다"며 "그런 부분들을 조화롭게 보자는 것으로 구체적인 것은 사례별로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핀테크 업계의 숙원인 망분리 규제에 대해선 가능한 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 그는 "망분리 규제는 금융보안에 관한 대원칙을 유지하되, 업무 성격, 개인정보 취급 여부 등을 고려해 규제 합리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며 "가능한 한 빨리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당국이 '동일 기능·동일 규제' 원칙을 재차 강조하면서 빅테크 업계는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간 강조하던 '동일 라이선스·동일 규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데다 지원보다는 규제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동일 라이선스·동일 규제'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라이선스에 따라 수익 구조나 혜택 등이 다른 만큼, 기능을 따져 똑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장성원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사무처장은 지난달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으로 촉발된 '동일기능 동일규제' 이슈에 대해서는 '동일라이선스 동일규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효용이 금융사와 같다지만, 동일한 수단으로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규제가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영준 핀산협 회장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한 국내 핀테크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육성이 필요한 때"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빅테크와 금융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이날 간담회는 규제 쪽으로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면서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향후 업계의 건의사항이 좀 더 반영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