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공동화 우려와 책임 소재
산업공동화 우려와 책임 소재
  • 홍승희
  • 승인 2003.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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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이 콜센터를 중국에 설립한다고 해서 큰 관심을 모았다. 금융감독원은 관리상의 난점을 이유로 들어 이를 반대하고 나섰지만 가뜩이나 산업공동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은행이 콜센터를 다른 나라에 세운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에 혼란을 겪는 이들도 적잖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미 세계는 IT산업의 빠른 발전으로 적어도 정보유통에 있어서 만큼은 세계 단일 네트워크가 구축되다시피 했다. 콜센터와 서비스 받는 주고객층의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 경영이 글로벌화하기 위해서는 전세계를 일주하는 콜센터 설치가 필요하다. 글로벌 경영은 그야말로 24시간 서비스의 맥이 끊기지 않는, 살아숨쉬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전세계가 비즈니스의 무대라면 24시간 잠시도 기업활동이 잠들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문제를 쇄국주의적 발상으로 대면해선 더 이상 글로벌 경영의 구호조차 내걸 수 없다. 콜센터 같은 서비스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시설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국내의 산업시설이 모두 해외로 나가기만 하고 국내로 유입되는 것, 또 새로 신설되는 것이 없다면 당장 높은 실업율을 더욱 끌어올리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가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발묶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산업공동화가 진행된다면 그 원인은 단순히 국내 기업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에서만 찾아선 안될 것이다. 오히려 저부가가치 산업의 해외 이전 이후 국내에 고부가가치 산업이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데 주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산업은 고부가가치화를 제때 이루지 못하고 국내 산업 공동화의 걱정거리를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있을까. 일단 표면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의 고부가가치 산업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기업 스스로의 안일한 추세 대응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 밖의 이유들은 실상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왜 기업들은 적절한 투자를 미뤘을까.
우선은 기업들이 미래 비전을 세우지 못했다는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국민은행 콜센터의 사례에서 보듯 IT산업의 기술적 역량과 그로 인해 변화해가는 세계 기업환경 변화의 추세를 읽지 못하면 제대로 미래 비전을 세우기 어려울 것이고 국내 기업들이 바로 그런 한계를 보였던 것이다.

어느 결에 국내 기업들이 불리한 환경에 맞서 한계를 극복하던 경제개발 초기의 도전정신을 상실하고 노동운동 탓, 정책 탓하기에 몰두하며 책임회피에 급급해 있다. 해외 생산시설 이전이 공격적 경영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고임금을 지향해야 할 경제환경을 회피하기 위한 소극적 방어기제의 결과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 결과 해외진출 기업의 대다수는 진출의 성과 대신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며 현지에서 철수하는 전형적인 패배자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기업이 활기차게 공격적 경영을 해나가려면 시장에 대한 경영자의 확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거 세제를 만들어 팔고 가전제품을 첨단산업으로 인식하던 시장환경과 달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네트워크 기술처럼 다소 추상적인 시장은 경영자가 기술에 대해 좀 더 확실히 알고 있지 않은 한 확신을 갖기 어렵게 한다. 감성의 시대로 표현되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문화적 인문적 소양을 소홀히 해 온 경영자들을 두렵게 해 투자의 적기를 스스로 흘려보내게 한 것이다.

둘째는 앞선 이유의 결과로 기업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을 기를 수 없게 했고 따라서 필요 인력이 제대로 공급될 구조도 만들지 못했다. 이미 국민의 정부가 우리의 희망은 IT를 기반으로 한 지식기반산업이라고 제시했지만 그것을 단지 ‘정치적 수사’ 정도로 치부해버린 우리 사회의 판단 미스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변화를 스스로 감지하지도 못하면서 변화를 알려줘도 고정관념에 갖혀 깔아뭉개 버린 대가다. 우리 사회 시스템의 그 경직성으로부터 기업도 자유롭지 못하다. 경영자의 최대 덕목이 유연성, 현실 적응력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덕목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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