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숭례문 복원보다 시급한 것
<기자수첩> 숭례문 복원보다 시급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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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보경 기자]<ich-habe@seoulfn.com>"방화로 유실된 국보 1호 숭례문의 복원보다 시급한 것은 '문화국민'으로서의 자존심 복원이다."
최근 숭례문 화재 이후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각종 몰상식한 행동들에 대한 뜻있는 이들의 자기성찰의 말이다. 문제는 한 두사람의 넋두리가가 아니라, 국민적 '울림'이라는 데 있다. 
 
먼저, 화재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공방과 문화재청,소방방재청,중부구청 등 관계기관의 책임떠넘기기는 늘 접하던 일이니 '고질병'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가자.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으로 방화를 저질렀다는 69세의 방화용의자 채 모 씨가 현장검증직전에 던진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의 말의 요지는, 사람이 안죽었으니까 다행이 아닌가, 그리고 숭례문은 다시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황당하다. 그러나, 이 또한 범죄 혐의자의 말인 만큼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치자.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숭례문에 '가짜 제사상' 을 차려 놓고 시민들에게 조의금을 내도록 유도한 뒤 그 돈을 챙긴 정 모(여ㆍ68)씨가 적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는 기가막힐 지경이다.
내막인 즉은, 정 씨는 숭례문 화재 다음날인 11일 오전부터 숭례문 옆 잔디밭 중앙에 향, 사과, 떡 등을 올려놓은 제사상을 차리고, 추도객을 모으기 위해 잔디밭 곳곳에 흩어져 있던 화환 4개를 제사상 옆에 갖다 놓았다. 숭례문이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이 제사상을 당국에서 설치한 것으로 생각해 주로 이곳에서 절을 하고 가지고 온 술과 음식을 차리기도 하는 상황이 자연스레 연출됐다. 정 씨는 숭례문을 애도하며 절을 하는 시민들에게 "1만원 정도는 조의금으로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모금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시민들이 숭례문 복원에 사용되겠거니 생각하고 1만~2만원씩 조의금을 냈고, 정 씨가 이를 가로채려 한 것. 14일 오후 4시30분쯤 숭례문을 찾은 한 시민이 정씨가 제사상에 놓인 돈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과 구청은 즉시 정씨가 차린 제사상을 철거하기에 이른다. 정 씨는 "내 돈으로 차린 제사상인데 왜 돈을 뺏느냐"며 항의하다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화재로 인한 국민적 상실감이 이제 막 아물어 가려는 참에, 이번엔 인터넷에서 말썽이 터져 나왔다.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나온 기왓장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상황은 극에 달했다. 
지난 15일 한 유명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숭례문 기와, 화재로 사라진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유할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으로 "숭례문 화재현장에서 나온 기왓장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 왔던 것. 이 네티즌은 "기왓장을 폐기물 처리장에서 수집했다"며 경매가를 50만~100만원으로 책정했다. 또 다른 네티즌이 '숭례문 기와 판매를 중지해달라'는 서명운동을 제안하면서 기왓장 판매를 반대하는 네티즌들이 잇따라 서명하는 등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기왓장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둘째치더라도, 이는 조의금 챙기기보다 한 술 더 뜬 것 아닌가. 

서명운동에 동참한 네티즌들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던 숭례문이 붕괴됐는데 어떻게 저런 양심 없는 짓을 하느냐"거나 "국보에 불을 지른 사람이나 기회는 이때다 하고 그걸 주워 파는 사람이나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쯤이면 아연실색이다. 

바로 전날인 15일 일부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된 숭례문 화재의 잔해 중 일부로 보이는 기왓장 등이 일반 쓰레기들과 뒤섞여 마구잡이로 파쇄되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국민들은 또 한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방화, 진화 실패, 책임 공방, 그리고 이어진 갖가지 추태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숭례문을 그럴듯하게 복원한다고 한 들,  '건물'하나 다시 짓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통탄할 일이다.
 
김보경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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