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숭례문의 값
불탄 숭례문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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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안타까움을 낳은 숭례문 화재의 방화 용의자가 “문화재는 복원하면 되는 거고 그래도 사람은 안 다쳤다”고 강조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워낙 ‘문화재 복원’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범죄자의 죄의식을 덜어주는 도구로도 쓰이는 모양이다.
하기야 지방자치단체가 ‘실적’을 만들어내기에 만만한 것 중 하나가 문화재 복원인가 싶게 별의별 유적지들이 다 복원 바람을 타고 있다. 숭례문만 해도 화재가 나자마자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해볼 것도 없이 곧바로 ‘복원’부터 거론됐다. 그 복원 비용을 대대적인 국민성금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던 차기 정부가 자발적인 성금을 내려던 이들까지 분노하게 만드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똑같이 복원해놔 봐야 그건 어디까지나 복제품일 뿐이다. 물론 국민 교육용 교재로서는 의미를 지닐 수 있겠으나 문화재적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 하다못해 액세서리 하나라도 원 생산자의 생산품과 복제품의 가격차는 몇 십 몇 백배에 달한다. 그 가격차가 단지 지적재산권 행사에 따른 비용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물며 수백 수천 년의 역사 그 자체로서 값을 갖는 문화재일까.
간혹 이런 지적에 대해 수원 소재 화성은 복원된 성이지만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화성은 18세기 당시 동·서양의 건축기술이 융합된 기념비적 건조물이기에 우리 고유의 건축물이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복원된 성곽 때문이 아니라 처음 축조 당시의 상세한 설계도면 등을 담은 화성성역의궤가 있어 원형 복원에 대한 높은 신뢰도로 평가받은 드문 사례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세의 탁월한 기록문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화성성역의궤도 뒤이어 훈민정음해례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직지심체요절 등과 더불어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를 문화재답게 보존하는 길은 ‘복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현대인들의 성에 차도록 말끔하게 보수, 복원된다면 그 가치가 더 높아질까.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 고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국가들은 섣부른 복원에 나서지 않는다. 폐허가 된 유적지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그걸 보는 관광객들에게 ‘역사’를 진하게 느끼게 만든다. 만약 그 유적지들을 우리 식으로 말끔히 손질해 놓는다면 거기서 과연 역사를 느낄 수 있을까. 단지 복제된 공예품을 바라보는 느낌만 들지 않을까.
요즘 한국인들의 발길이 잦은 동남아 여러 나라를 다니다보면 종종 똑같이 복제된 관광 상품으로서의 문화를 만나곤 한다. 정말 저들의 고유문화였을지 의심이 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있어도 그 숫자가 적어서 더 보태 ‘상품이 되게’ 하려다 보니 그런 특색 없는 혼합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일 터이다. 마치 내세울 특별한 메뉴가 없는 식당에서 서로 조합하기 어려운 여러 종류의 메뉴를 뒤섞어 손님을 끌려는 것과 비슷하다.
어설픈 복원은 우리 역사를 모욕하는 일이 되기 쉽다. 또 ‘역사’를 생각하지 않는 문화재 복원은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 될 수 있다. 충분한 사료적 근거를 갖고 온전하게 복원하더라도 조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문화재 복원을 마치 공산품 찍어내듯 쉽게 생각하고 덤비는 우리의 조급증은 일단 내려놓을 일이다.
어제가 오늘을 낳고 오늘이 내일을 낳는 그 역사의 의미를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제대로 ‘역사’를 생각하도록 배워보지 못하고 단지 연대 외우기로만 기억하게 된 탓도 있다. ‘역사’는 무엇인가를 배우는 지식 못지않게 그 속에 담긴 현재적 의미를 깨우쳐가는 지혜의 보고다.
문화재이기보다 관광 상품으로 여겨 대책 없이 개방만 시켜 놓은 지자체나 단지 월 30만원을 절약하려고 몇 백 년 지켜온 국보 1호 문화재의 보호를 단지 감시 장비에만 맡긴 돈 많은 지자체와 같은 의식으로 서투른 복원에 나서는 것은 어제와 내일의 단절을 부를 뿐이다.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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