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3국, 따로 또 함께
동북아 3국, 따로 또 함께
  • 홍승희
  • 승인 2003.09.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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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는 엄청난 위력에도 불구하고 단시간내에 지나갔지만 환율과 유가 폭풍은 아직도 잠재워지지 않았다.

지난 한 주 한국의 증권시장을 강타한 환율과 유가 폭풍의 위력은 태풍 매미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삽시간에 주가가 폭락하며 가뜩이나 스스로 위기감을 증폭시켜온 국내 경제를 더욱 심하게 흔들었다.

원화가치 상승이 국내 경제 성장과 맞물려 있다 해도 그 폭이 과도하면 조심스럽다. 그런데 국내 경기는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큰 폭으로 점핑하듯 올라버렸으니 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반응이 좀 과도했다.

국내 증시가 기겁하긴 했지만 이미 미국의 환율 공습은 예상된 바였기에 실상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올해 들어 미국은 계속 달러 약세를 방치하는 듯한 소극적 대응을 보였고 이에 따라 각국이 적절히 대응해나갈 여지가 있었다. 그동안은 미국의 환율공세가 단지 물밑 작업 위주였기 때문에 각국이 환율방어에 나서며 어느 정도 충격흡수를 위한 대비가 가능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방어조차 심각한 한계에 부딪쳤다. 두바이 G8 재무장관 회담에서 아시아를 향한 선전포고와 함께 포문이 열렸다. ‘아시아 각국의 유연한 환율정책’을 촉구하는 선언서가 채택된 것이다. 그리고 1차 타겟은 일본 엔화가 됐다.

아시아 유일의 G8 참가국인 일본이 1차 공습대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 자체도 일본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일본은 그동안 스스로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꿈에 젖었다가 환율공습에 그대로 노출됐다. 북미와 유럽국가 중심의 G8에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낀 일본이 그동안은 아시아 국가들과 자신들은 다르다는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두바이 선언을 통해 아시아를 견제하려는 구미세력들의 공습에서 일본 혼자 자유로울 수는 없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렇다고 아시아 국가들의 국제사회 발언권이 함께 높아지지 않으면 일본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이 기회에 일본이 깨닫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구미세력들이 견제하고자 하는 아시아는 동북아 3국이다. 중국, 일본, 한국. 이미 구미세력들은 ‘아시아’를 공격대상으로 삼고 나섰다. 따라서 이제는 그 공격을 받는 동북아 3국이 각자 자국 환율방어에만 매달려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를 생각할 때다.

원화 환율은 여전히 달러화에 연동돼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일본 엔화와 밀착돼 움직이는 동조화 현상이 매우 깊어진 상태다. 그에 따라 엔/달러 환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번 환율 폭풍에선 지나치게 과민반응했다는 진단도 나올만큼.

일본 엔화는 환율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연간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1천1백억 달러를 넘는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의도된 공격이 아니더라도 엔화가치 상승을 무턱대고 막고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경기회복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일본이 과거처럼 미국채권 구입에 열을 올리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어서 일본 정부의 환율방어 노력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아직 외환시장이 제대로 개방되지 않은 중국의 위앤화는 비교적 안정적인 변동을 보일 것이지만 이미 WTO에 가입한 중국이 언제까지나 외환시장을 닫아걸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달부터 외환거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결정도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싸잡아 공습을 받는 동북아 3국이지만 저마다 처한 상황은 이처럼 다르다.

그러나 지금 이 3국은 같은 공격범위 안에 들었다. 그렇다면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그나마 타격을 줄이는 방법이다. 동북아 3국이 구미세력들의 환율공습에 어떻게 협력 대응할지를 논의할 새로운 틀이 시급해진 것이다.

여기서 한국은 좀 더 능동적인 자세로 틀짜기에 나서야 한다. 이미 동북아 블록이 논의되기 시작한 상태에서 철저한 실리주의 국가들인 중국 일본과 함께. 더 이상 어리숙한 국제사회의 ‘봉’이 되지 않도록 우리 또한 철저한 실리주의로 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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