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증오를 이용하는 정치
[홍승희 칼럼] 증오를 이용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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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팬데믹에 우왕좌왕하고 요즘 전 세계에서 2차 대전 이후 단계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던 사회 특정 집단을 향한 증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증오의 표적이 되는 대상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특정 대상을 지목해 증오를 표출하는 방식은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그 증오의 확산 방식도 거의 복사하듯 되풀이 되고 있다. 사회적 불만 가득한 대중 일부가 특정 집단을 향해 쏟아내는 증오를 정치인들이 부추김으로써 자신들이 받을 민심의 화살의 방향을 돌리고 미디어는 이를 제대로 된 비판 없이 받아 확산시키는 것이다.

물론 혐한을 일상화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특이한 사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는 사회적 불안이 커질 때 일시적으로 증폭되기 마련이다. 1차 대전 이후의 과도한 전쟁 배상금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에 쌓여가던 사회적 불만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수용하면서 세력을 키운 독일의 나치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의 사회적 증오는 거의 미국내 팬데믹처럼 광범위하게 번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평소에도 백인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제법 공공연하게 나타나곤 했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 그런 현상은 더 확산되는 듯했다.

경찰관에 의해 무고한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흑인시위와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들이 이어지는 한편에서는 비록 온라인상에서일 뿐이지만 이를 비아냥대는 백인들의 반대시위도 나타나며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런 갈등에 더해 C19를 계기로 미국 정부가 앞장서서 반중국 정서를 확산시키자 아시아인종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번지기도 한다.

반중국 정서는 2차 대전 중 나치의 증오범죄에 기겁해 전후 사회적 증오를 몹시 경계하던 유럽에서조차 확산될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 보조를 맞춘 영국을 필두로 특히 영연방 국가들에서 강력하게 나타나는 C19 확산의 중국책임론이야 방역실패로 곤경에 처한 정부와 정치인들이 자국내 비판여론의 방향을 돌리려는 꼼수라 치더라도 이런 정치적 행동이 대중들의 아시아인종에 대한 편견을 증가시키며 종종 폭력사태를 낳기도 한다.

중국과 같은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이 그런 폭력에 희생된 뉴스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방치될 경우 결국은 인종갈등으로 치닫게 될 것이기에 국제사회가 이 단계에서 더 이상 이성을 잃는 일이 없게 통제돼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겨냥된 비판화살을 돌릴 희생양으로 중국을 선택했고 특히 팬데믹 이후의 심각한 경기불황이 예정된 상황에서 이런 현상이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리고 중국인들과 같은 인종이라는 이유로 해외의 한국인들 역시 분노한 유럽인종들에 의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위험성이 더 커져갈 것이다.

증오에 관한 한 한국사회도 다른 나라들과 큰 차이는 없다. 물론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돌출된 증오는 아닐지라도 늘 주변국들의 침략성에 위협받고 있는 지리적 상황에 놓여있기에 주변국들에 대한 경계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과는 6.25 전쟁을 겪은 데다 아직 종전도 안 된 채 70년이 흐르다보니 단순한 경계와 거부감을 넘은 증오심을 아직 내재화한 세대들이 아직도 꽤 그 폭이 넓다. 특히 고령층으로 갈수록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전쟁의 고통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적으로 싸웠던 북한에 투영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드보복을 당한 중국에 대해서나 경제전쟁 중인 일본에 대해서도 분노의 단계를 넘어 증오가 커져가는 듯하다.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 C19 대응과정에서 서운했던 베트남에 대해서도 매우 심하게 화를 내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정당한 분노는 자연스럽지만 그것이 공격한 집단과 그 집단 안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굳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적절한 분노는 우리의 성장을 촉진시키지만 그 분노가 증오로 고착화되면 오히려 사회적 퇴행을 초래할 수 있다.

요즘 젊은 네티즌들이 온라인상에서 보여주는 당당함과 자신감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이 지나쳐서 주변국들과 그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증오로 표출되는 것은 사회적 발전을 지속해나가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증오의 이면에는 자존감의 부족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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