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꿴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신뢰관계 회복부터"
첫 단추 잘못 꿴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신뢰관계 회복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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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인' 공론화는 정말 가능한가
"제대로된 핵폐기물 대책 없다면 '원전 모라토리엄' 선포해야"
지난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고준위핵폐기물 토론회에서 정정화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혜경 기자)
지난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고준위핵폐기물 토론회에서 정정화 고준위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혜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 5월 29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첫날부터 논란만 불거졌다. 원전 지역을 비롯해 이해당사자가 재검토위에서 배제되면서 지난 박근혜 정부처럼 '반쪽' 공론화위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나오고 있다.

중립 위원들로만 구성됐기 때문에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지만 에너지 정책 중 가장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원전 정책을 두고 중립적인 공론화가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부터 재검토위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는 등 시민사회의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 재검토준비단이 정부에 건넨 '정책건의서'의 향방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6년 마련된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재공론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지역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고, 공론화 위원 6명이 사퇴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되지 못했다는 점이 컸다. 이에 본격적인 재공론화를 시작하기 전 의제 정리 등의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해 5월 11일부터 6개월간 재검토준비단이 운영됐다. 

이날 토론회에 첫 발제자로 나선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준비단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쟁점을 도출하고 정책건의서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면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충분한 협의를 통해 결과 도출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준비단이 건의한 내용은 △재공론화 목표 △재공론화 항목과 의제 △재공론화 순서 △재공론화 지역의견 수렴범위 △재공론화 위원회 구성 등이다. 이중 목표와 의제, 순서는 합의됐지만 지역의견 수렴범위와 위원회 구성 방안은 다수안이 도출됐다. 

우선 항목과 의제 부분에서는 10개 항목·27개 의제가 합의됐다. 10개 항목에는 기본방향에 관한 사항인 △사용후핵연료 발생량·포화전망 △고준위방폐물 관리원칙 △사용후핵연료 성격 및 용어정리 등이 포함됐고, 원전 부지 내 관리 사항에는 △저장시설 확충여부 △시설규모 및 운영기간 △주민소통 방안이, 원전 부지 외 관리에는 △관리시설 확보와 부지선정 방안 △유치지역 지원 방향 등이 포함됐다. 그 외 관계법률 정비와 기술개발 등도 논의해야할 항목들이다. 

이 사무국장은 "원전부지 내 관리에 관한 사항은 5개 발전소 지역에 '지역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 결정을 하도록 했다"면서 "이는 준비단에서 처음 제기됐으며 지난 정부의 공론화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저장시설 확충 여부를 지역주민이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지원 방안의 경우 저장시설 문제가 보상금 문제와 연결될 가능성을 우려해 처음부터 의제와 분리했다"면서 "5개 지역 주민 대표가 동의한 것은 큰 진전"이라고 덧붙였다. 

또 재공론화 순서는 1단계 의견수렴 과정인 전국공론화를 마무리한 후 2단계 지역공론화를 진행하도록 설계됐다. 지역 주민의 불이익 방지 등의 목적으로 1단계와 2단계를 병행하거나 역행할 수 없다. 준비단에서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된 사안은 '지역의견 수렴 범위'와 '위원회 구성' 항목이었다. 두 항목 모두 다수안만 도출된 상태다. 

지역의견 수렴 범위의 경우 당초 제시된 5안 가운데 1안과 2안, 4안은 폐기되고 원자력 산업계 위원 3인이 지지한 3안과 지역 대표와 환경단체 위원 8인이 지지한 5안이 최종 유지됐다. 3안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주변지역이 의견 수렴 대상이며, 원전으로부터 반경 5km 내다. 반면 5안은 원전 소재 지역 기초지자체 행정구역 및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상충 시 원전 소재지 의견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3안에 비해 5안이 의견 수렴 범위가 넓으며, 후자의 경우 지역 위원 5인과 환경단체 위원 3인이 합의한 결과다. 

자료=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자료=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위원회 구성은 이해당사자 참여 방안과 중립위원 구성 방안이 대립됐다. 지역과 환경 위원 사이 이견이 발생해 논의가 진행됐고, 후반부에 극적으로 합의안이 마련됐다. 재검토준비단 구성과 동일한 정부 추천 4인과 지역 대표 5인, 환경단계 3인, 산업계 3인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 사무국장은 "20차 회의에서 이해당사자 참여 방안으로 가합의가 됐지만 다음 회의에서 번복됐다"면서 "20차 회의에 정부 측 위원이 참석하지 않았다가 21차 회의에 참석해 반대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원 합의가 원칙이므로 이해당사자 참여 방안은 다수안으로 채택됐다. 

지난해 11월 12일 준비단은 활동을 공식 종료하고 정책건의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이후 재공론화위 출범까지는 무려 6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반년 동안 산업부가 한 일은 이해당사자 참여 방안이 아닌 중립위원으로 재공론화위를 구성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불신이 불거졌고, 중립위원으로 공론화위가 구성된 후 일각에서는 정책건의서 내용까지 부정하는 시도도 벌어지고 있다고 이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 월성 2·3·4호기 폐쇄부터 재검토위 재구성까지···다양한 의견 쏟아져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2016년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향후 수립될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현재 원자력진흥위에서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만 고준위방폐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인데 법적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 국내에는 고준위가 단 한 건도 없는 셈"이라면서 "고준위가 존재하지 않는데 관리계획을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취지에서 문제 제기를 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월성 2·3·4호기의 수명은 각각 2027년, 2028년, 2029년이다. 건식저장인 맥스터 건설로 발전소 가동 연한은 6~8년 길어지지만 설계수명 50년의 맥스터는 최종처분장이 건설되지 않을 경우 2070년까지 경주에 남아있게 되는데 결국 임시저장이 아니라 영구적인 방폐장이 되는 것"이라면서 "이들 원전이 국내 전체 전력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이므로 운영하는 것보다 조기폐쇄를 통해 폐기물 양을 줄이는 방향이 적절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수진 정책학 박사는 "독일의 경우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신규 원전 건설이 이뤄지지 않았다. 원전 건설이 제일 활발했던 1970년대에 이같은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재처리 관련 폐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지금까지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정치권이 책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원전 모라토리엄(유예)' 기간을 설정하고, 전국민이 모두 인지할 수 있도록 공론화를 진행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임성희 녹색연합 팀장은 "원자력계가 폐기물 문제를 주도해야 하는데 이쪽이 오히려 조용한 것도 문제다. 핵폐기물 처리와 발전소 수명은 한 몸이기 때문에 발전소 가동만 생각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면서 "이해당사자를 공론화에서 배제한 것은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으로 쉽게 처리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검토위 구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제기됐다. 김용국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중립 성향의 재검토위가 구성됐다고 하지만 제일 강력한 이해당사자는 산업부"라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사업자 등에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 무너진 신뢰관계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재검토위 재구성 등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공론화 진행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북녹색연합의 한 회원은 "중립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에 현재 재검토위 위원들은 사퇴해야만 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도 "불신이 쌓인만큼 신뢰관계를 쌓는데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이미 갈 길을 정해놓고 재검토위를 만든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시민사회의 반응에 엄재영 산업부 원전환경과 과장은 "위원 구성 관련 준비단 건의서에는 '합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안들을 정부가 참고해서 결정하기 바란다'고 명시돼 있었다"면서 "일부 이해관계자 참여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었기 때문에 보완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 적이 있다. 정부는 최대한 많은 권한을 재검토위에 위임하고, 공론화를 지원하는 입장에만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재공론화 위원장인 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정부 공론화와 삼척 원전 건설 당시 한수원의 행태를 미뤄봤을 때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부분은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공론화 위원들의 낮은 이해도는 또 다른 고민거리"라면서 "공론화를 제대로 이끌어나가는 것은 학자로서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위원회 재구성이 정말 시민사회의 공통된 의견이라면 본인은 얼마든지 수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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